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불고 있는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으로 장기 독재정권들이 잇따라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정치적 공통점들이 적지 않은 리비아의 가다피 정권 몰락은 북한에도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오늘부터 두 차례에 걸쳐 가다피 정권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한 국제사회의 개입 근거와 북한에 대한 적용 가능성 등을 진단하는 특집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달 20일 전세계는 한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를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성난 리비아 군중들이 도로 배수구에서 붙잡은 무아마르 가다피 전 국가원수에게 폭력을 가하며 피를 흘린 채 죽어가는 그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 이어 가다피의 시신은 한 정육점의 냉동창고에 놓인 채 한동안 군중들의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이 처참하고 충격적인 장면을 끝으로 8개월에 걸친 리비아의 반 독재 투쟁과 42년 간 지속된 가다피의 철권통치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어 2만 6천 번의 전투기 출격으로 시민군을 지원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의 안드레스 포그 라스무센 사무총장은 10월 31일로 리비아 작전의 종료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리비아 개입 근거였던 ‘국민보호책임’ 에 관한 책을 지난 주에 출간한 국제법 변호사 제라드 겐서 씨는 2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가다피 몰락 과정을 매우 진지하게 지켜봤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랍의 봄이 예기치 않게 찾아왔듯 북한의 민주화 바람도 갑작스레 올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정부가 이를 예민하게 주시했을 것이란 지적입니다.

실제로 튀니지와 이집트 시위 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북한 정부는 유엔 안보리가 지난 3월 초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승인하고 프랑스가 리비아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자 이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관영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에서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란 서방세계가 안전담보, 관계 개선이란 사탕발림으로 무장을 해제시킨 다음 침략하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이는 주권국가의 자주권과 영토에 대한 난폭한 침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엔 안보리가 리비아에 대한 무력 개입의 근거로 삼은 ‘국민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R2P)은 핵과 관련이 없고, 주권도 무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유엔이 지난 2005년 ‘국민보호책임’ 결의를 채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던 가레드 에반스 전 호주 외무장관은 주권 존중을 방패 삼아 잔혹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정권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결의한 것이 R2P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반스 전 장관은 지난 4월 미국 예일대학 강연에서 국제사회가 옛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는 등 여러 노력을 했지만 캄보디아, 르완다, 코소보 등지에서는 여전히 집단학살이 계속 자행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 회원국들이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자각해 민권 우선보호 차원에서 늦게나마 합의한 원칙이 ‘R2P’ 라고 설명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3월 17일 국제사회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가다피 정권이 10만 명에 달하는 벵가지 일원의 시민들을 학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수용해 ‘R2P-국민보호책임’ 원칙을 근거로 결의안 1973호를 채택했습니다.

제라드 겐서 변호사는 국제사회가 2005년 결의한 자주권의 정의를 북한 정부가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주권이 의미하는 모든 권리는 정부가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수반하고 있다는 겁니다. 겐서 변호사는 정부가 이런 책임을 이행할 의지가 없거나 막을 수 없을 경우 국제사회는 의무적으로 이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개입의 근거는 바락 오바마 대통령의 리비아 개입 지지 연설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Some nations may be able to turn blind eye to atrocities in another country.."

바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월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은 일부 나라들처럼 다른 나라의 잔학한 행위를 외면할 수 없다며, 가다피의 잔인한 탄압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겐서 변호사는 북한 정부 역시 ‘R2P-국민 보호책임’ 원칙에서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과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 그리고 쉘 마그네 본 데빅 전 노르웨이 총리는 이미 지난 2006년 북한 정부가 자국민 보호에 실패했다며 유엔 안보리의 개입을 촉구하는 성명과 책을 발표했다는 겁니다.

이들은 당시 성명에서 북한 정부가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수 백만 명을 기아로 숨지게 한 데 이어 여전히 만성적인 기아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정치범 수용소 운영 등 조직적인 반인도적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더 심각한 참상을 막기 위해 안보리 등 유엔 기구들이 북한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겐서 변호사 등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과 리비아 정권이 공유하는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환경 때문에 국제사회의 개입은 다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리비아 가다피 정권의 몰락이 북한에 시사하는 점들을 살펴보는 특집기획! 내일은 두 번째 순서로 전문가들이 말하는 북한과 리비아의 공통점과 국제사회의 개입 전망에 관해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