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근들어 아시아에 역점을 두고 외교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두 차례에 걸쳐 이 같은 미국의 외교적 움직임이 나오게 된 배경과 전망을 살펴보는 특집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아시아 중시 외교정책의 배경을 알아봅니다. 김연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최근 미국의 외교전문 잡지 ‘포린 폴리시’ 11월 호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문의 글을 기고했습니다.

미국이 올 연말 이라크 전쟁에서 손을 떼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 철수가 시작되는 만큼, 이제는 장기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외교적으로 역점을 둘 때가 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외교적 자산을 이 지역에 집중 투자하는 이른바 ‘전진배치 외교’를 통해 미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새 정책방향은 미국이 올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APEC) 회의의 주관국으로서 그저 의례적으로 제시한 게 아니었습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중순  9일 간의 아시아태평양 순방 중 미국이 과거와 달리 이 지역을 전략적으로 우선순위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7일 호주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자신의 국가안보 보좌진들에게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존재와 역할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미국의 전략 변화는 우선 경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2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TPP) 참가국들과 원칙적인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경제적으로  묶어 이끌어 나가겠다는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겁니다.

전문가들은 유럽이 금융 위기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성장세를 지속해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국이 관심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조사국의 딕 낸토 연구원은 미국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을 통해 수출 증대와 국내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중국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시아에서 미국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만한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는 겁니다.

중국의 부상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결합돼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미국이 경제적으로도 중국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낸토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에는 미국과 호주,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등 모두 9개 나라가 협상에 참여하고 있고, 일본과 캐나다, 멕시코도 참여할 뜻을 밝혔지만 중국은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태평양 순방 기간 중 안보 분야에서도 이 지역에서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계속해서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호주에 해병대원 2백50명을 상시 주둔시키기로 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난 16일 오바마 대통령과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가 이같이 합의함에 따라

미군 전투기와 핵무기를 탑재한 함정이 호주의 군 기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같은 합의가 발표되자 세계 각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신안보센타의 패트릭 크로닌 박사는 미국이 중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두고 있다기 보다는 이 지역국가들과 군사협력 체제를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크로닌 박사는 특히 남중국해 주변의 미국 동맹국들과 우방들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군사적 위협을 당하지 않고 국제규범이 확실히 준수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미국이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래리 닉쉬 연구원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필리핀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어 무력충돌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이 필리핀과 베트남의 지배 아래 있는 섬들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이들 나라의 석유 탐사 작업을 방해할 경우 대규모 무력충돌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안정적인 해상교통로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에도 큰 우려사안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분쟁 당사국은 아니지만 태평양 국가로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단결과 발전, 협력이라는 회의 주제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며 우회적으로 미국을 비판했습니다.

결국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역내에서 영향력을 넓혀 가는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 새롭게 우선순위를 두는 미국 간 첨예한 갈등의 요인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