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고향인 북한을 떠나 미국에서 1만 명의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준 한인 의사가 있어 화제입니다. 언제든 고향을 다시 찾아 북한 주민들에게도 의료봉사를 하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에 있는 한 진료소에 천식 환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들어섭니다.

치료비도 의료보험도 없었지만 의사와 오랫동안 상담을 하고 나온 환자는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안은 채 진료소 직원들의 환호와 박수까지 받았습니다.

1만 번째 무료진료 환자. 진료소가 문을 연 지 19년 만에 달성한 기록입니다.

지난 1993년 이 곳에서 무료진료를 시작한 사람은 북한 실향민인 혈액암 전문의 김유근 박사입니다.

[녹취: 김유근 박사] “어릴 때 미국 이민 와서 한국전쟁 때 오신 미국 군인과 가족들을 위해서 다시 페이백 (보답하는), 그런 의미로서 합니다.”

6.25 참전용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무료진료는 일반 미국인들로 확대됐습니다. 물론 의료보험이 없는 저소득층 주민들이 대상입니다.

2005년부터는 아예 개인병원 진료를 중단하고 무료진료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올해 67살인 김유근 박사가 6.25 참전용사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 이상입니다. 평생 그들과 맺은 각별한 인연이 이를 말해줍니다.

1952년 미 8군 소속으로 6.25에 참전했던 제이크 허파커 씨가 김 박사를 만난 건 지난 1986년입니다.

[녹취: 제이크 허파커 씨, 6.25 참전 용사] “He’s a real caring doctor. He takes care…”

허파커 씨는 김 박사가 한결같이 자신을 보살펴 준 따뜻한 의사라며 26년 간의 오랜 인연을 회고했습니다.

평안남도 중화가 고향인 김 박사가 월남한 건 1951년. 7살 때 였습니다. 평양의전 출신인 김 박사의 부친은 김일성종합대학 의과대학 외과과장으로 있던 장기려 박사와 함께 김일성 주석을 치료한 경험도 있습니다.

[녹취: 김유근 박사] “고모, 삼촌, 사촌들, 형제들, 다 이북에 살아 있어요. 60년 동안 우리가 못보고 그랬으니 이게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평생을 열심히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기회를 준 미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무료진료에 생업 이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습니다.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저소득층 미국인 환자들이 하루에도 30~40 명씩 김 박사의 진료소를 드나듭니다. 각종 검사와 진료가 모두 무료여서 멀리 멤피스나 켄터키 주에서 오는 환자도 있습니다.

[녹취: 스탠리 에스텝 씨, 미국인 환자] “I am a diabetic. Every time I talk to…”

김 박사에게서 당뇨와 심장병 치료를 받아 온 미국인 스탠리 에스텝 씨는 자신이 다니는 직장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3년 전부터 김 박사의 진료소를 찾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직장이 있어도 의료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미국인들에게 김 박사는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워했습니다.

김 박사는 환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진료가 없는 수요일에는 브라이스빌 폐광촌과 켄터키 오네이다까지 찾아가 의료봉사를 해 왔습니다. 운전거리만도 무려 2백70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멀어도 꼭 찾아가서 자신의 의료기술을 나눠주고 싶은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고향 북한입니다.

[녹취: 김유근 박사] “그게 사실 내 고향 아닙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자기가 출생한 그 곳, 어릴 때 놀던 그 곳, 그 얼마나 좋은 겁니까? 다시 가서 그런 봉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거에요.”

이 같은 생각은 북한으로부터도 신뢰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빌리 그래엄 목사를 만나면서 더욱 간절해졌다고 김 박사는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녹스빌까지”, 김유근 박사가 집필 중인 저서의 부제에서도 고향 북한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납니다.

7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을 등진 북한 주민 김유근 박사. 김 박사는 의사로서 미국에서 쉼 없이 나눔을 실천하면서도 한시도 떠나온 고향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리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