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올 봄부터 북한에서 한국전쟁 참전 미군 유해 발굴작업을 시작함에 따라 실종자와 전사자 가족들의 희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전자 신원 확인을 거쳐 61년만에 한국전 전쟁포로였던 외삼촌의 유해를 찾은 한 조카가 있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국 동부 뉴저지 주에 거주하는 로버트 호킨스 씨는 지난 연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외삼촌의 유해가 고향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온다는 감격스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갓 3살 때인 1951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된 뒤 2년 뒤인 1953년 사망 판정을 받은 외삼촌 조지 포터 일병을 호킨스 씨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녹취: 로버트 호킨스 씨] "I think he was 5 feet 8 inches…"

입대 당시 삼촌의 키가 178 센티미터에 몸무게는 56 킬로그램 정도였다는 것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외삼촌에 대한 기억은 6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더욱 희미해졌습니다.

올해 65살인 호킨스 씨가 기억하는 것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아들의 생사 확인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미 육군이 가끔씩 보내오던 전사자와 실종자 소식지를 꼼꼼히 읽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지난 해 크리스마스 무렵, 호킨스 씨는 미 육군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전해 받았습니다.

[녹취: 로버트 호킨스 씨] "They called me and sent…"

미 육군의 요청으로 1년 반 전에 포터 일병의 누나인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유전자를 제출했었는데, 유전자 감식을 통해 포터 일병의 유해가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에 호킨스 씨는 크게 놀랐습니다. 96살로 치매를 앓고 있어 동생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입속을 면봉으로 살짝 건드려 채취한 유전자를 미군에 보낼 때까지만 해도 별 기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킨스 씨를 방문한 미 육군 관계자들은 외삼촌이 1951년 한국 강원도 횡성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에서 중공군에 전쟁포로로 잡혔다고 전했습니다.

조지 포터 일병은 19살의 나이로 미 육군 제2보병사단 B 대대, 15 야전포병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7개월이 지난 1951년 2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린 한국 군과 미군 화력지원 부대들은 강원도 횡성으로 철수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호킨스 씨] "What happened was…"

앞서 가던 아군 트럭 한 대가 폭탄으로 폭발하면서 주요 도로가 봉쇄됐고, 그로 인해 차량행렬이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 매복 중이던 적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틀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포터 일병은 이 격전에서 다른 병사 1백 40여명과 함께 실종됐습니다.

포터 일병은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뒤 황해도 해주의 수안 수용소에 수감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군 당국에 따르면 포터 일병의 유해는 1991년에서 94년 사이 북한 측으로부터 넘겨 받은 208 개의 유골 상자 속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머나먼 북한 땅에서 사망한 포터 일병의 유해는 이후 길고 복잡한 신원 확인 과정을 거쳐 61년만인 지난 25일 고향인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왔습니다.

포터 일병의 유해는 호킨스 씨 가족과 한국전참전용사회 뉴저지 주 깁스보로 54 지부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27일 부모님이 묻혀 있는 펜실베이니아 헌팅턴 밸리의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호킨스 씨의 사연은 한국전쟁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아직도 그 생사를 알지 못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 같은 희망은 특히 미국과 북한이 올 봄부터 북한에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하기로 합의한 뒤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녹취: 로버트 호킨스 씨] "It is amazing…"

살아서 돌아왔더라면 81살이 됐을 외삼촌의 유해를 맞는 65살의 조카 호킨스 씨. 호킨스 씨는 미국 정부가 외삼촌을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이 너무나 놀랍고 자랑스럽다며,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해 고통 받는 많은 한국전 참전 미군 가족들에게 자신과 같은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소리, 유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