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인근에 위치한 ‘웨스트햄튼비치’의 주방에 '우리는 코셔 채식주의자입니다'가 적힌 보드판이 진열돼 있다.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인근에 위치한 ‘웨스트햄튼비치’의 주방에 '우리는 코셔 채식주의자입니다'가 적힌 보드판이 진열돼 있다.

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서로 다른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종교 문제는 민감하고도 중요한 사회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데요. 미 동부 뉴욕주의 롱아일랜드에 가면 종교 간의 화합을 이루어 낸 빵집이 있다고 합니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오디오] 유대인과 무슬림이 모두를 위한 빵집...출소자들을 위한 정비소

“첫 번째 이야기, 유대인과 무슬림이 모두 찾는 뉴욕 빵집”

[현장음:비치 베이커리 그랜드 카페]

롱아일랜드 외곽에 위치한 ‘웨스트햄튼비치’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이 곳에 위치한 ‘비치 베이커리 앤 그랜드 카페(Beach Bakery and Grand Café)’라는 빵집은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조리한 ‘코셔’ 제품을 파는 가게인데요. 몇 년 전 이 빵집은 유대인이 아닌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 이민자에게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대인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녹취: 이바 루벡] “우리 가족이 코셔 음식을 먹기 시작한 이후부터 계속 이 가게를 찾고 있습니다. 코셔 제품을 팔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이 지역에서 코셔를 취급하는 곳은 여기 한 곳밖에 없거든요.”

처음 이 빵집의 주인이 바뀌었을 때, 지역 주민들은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신자가 빵집을 인수했으니 더 이상 코셔 제품을 팔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요. 하지만 새 가게 주인이 된 라시드 술레리 씨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계속 코셔 방식으로 조리할 것을 약속하며 주민 회의까지 소집했다고 했습니다. 

[녹취: 라시드 술레리] “작년에 지역 유대교 회당에 지역 주민들을 모아놓고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한 800명 정도 모였던 거 같아요.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시청한 사람도 400만 명이 넘습니다. 그만큼 우리 가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아주 컸던 거죠. 저는 지역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우리 가게가 코셔 인증을 받고, 코셔 방식을 따르는지 아닌지 누구나 와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라시드 씨는 엄격한 코셔 방식을 따르는 동시에 자신의 신앙에 따라 역시나 특별한 방식을 요하는 무슬림 조리법인 ‘할랄’도 따랐습니다. 

[녹취:라시드 술레리] “'코셔’와 ‘할랄’의 가장 큰 차이는 고기를 손질하고 다루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기류를 아예 팔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니까 채식과 유제품만 팔기로 한 겁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 코셔의 기준에 맞추면 할랄의 기준에도 자동으로 맞춰지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술이었어요. 유대인들은 술을 마시지만, 무슬림은 술이 금지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술도 팔지 않기로 했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 조리법을 다 따르려다 보니 가게에서 파는 음식의 종류는 확 줄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유대인 손님에 더해 인근의 무슬림들까지 찾으면서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오랜 기간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유대인과 무슬림들이 미국의 한 빵집에서 함께 빵을 사 먹으며 화합을 이루기 시작한 겁니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 가운데는 유대교 남성들이 쓰는 모자인 ‘키파’를 쓴 사람은 물론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는 ‘히잡’을 쓴 손님들도 있었지만, 서로 불편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녀에게 이런 빵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꼭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유대인 손님도 있었고요. 여기 빵집에서 파는 제품들은 다른 어디서도 찾기 힘든 것들이라며 칭찬하는 손님도 있었죠. 또 코셔와 할랄을 모두 다루면서 지역 주민들이 서로에게 열려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소가 됐다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인 라시드 씨는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빵을 만들 수 있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라시드 술레리] “손님들이 와서 빵을 고르면서 서로 대화도 하고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입니다. 누구든 우리 가게에 와 보면, 왜 우리 빵집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이처럼 비치 베이커리 그랜드 카페는 웨스트햄튼비치 지역의 종교 화합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는데요. 코셔와 할랄 두 가지 방식을 다 고수하는 동시에 훌륭한 맛까지 자랑하며 지역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교도소 출소자들이 미국 메릴랜드주 헤일스로프의 한 정비소에서 정비 기술을 배우고 있다.
교도소 출소자들이 미국 메릴랜드주 헤일스로프의 한 정비소에서 정비 기술을 배우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출소자들을 위한 자동차 정비소”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은 사회에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도 있지만, 특별한 기술이나 직업이 없는 탓에 다시 또 범죄의 현장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많은데요. 미 동부 메릴랜드주 ‘헤일스로프’시에 가면 출소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자동차 정비 기술을 가르치는 정비소가 있다고 합니다. 

[녹취: 션 하워드 베이] “저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지금 이 자동차 정비 일이 저의 첫 번째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식 자격증을 가진 자동차 정비사가 됐다는 게 저에겐 너무나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자동차 정비를 능숙하게 하고 있는 션 하워드 베이 씨는 20년 이상을 감옥에 있다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녹취: 션 하워드 베이] “저는 15살 때 감옥에 갔습니다. 마약 거래를 하다 잡혔는데 일급 살인에 일급 폭행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21년을 복역했어요. 그리고 37살에 출소를 했는데, 감옥에서 나오던 때가 2월이었거든요. 날씨도 춥고 정말 막막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출소하기 바로 전날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비통했죠. 하지만 그때 결심했습니다. ‘이제 허튼짓을 하지 않겠다’,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해보겠다’라고요.”

그래서 션 씨가 찾은 곳이 바로 ‘풀서클 정비소 교육 센터(Full Circle Auto Repair and Training Center)’ 입니다. 이곳에서 션 씨는 열심히 일하며 출소자도 제2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있었습니다. 

4년 전, 풀서클 정비소와 교육센터를 세운 사람은 마틴 슈워츠 씨입니다.

[녹취: 마틴 슈워츠] “우리 정비소에선 출소자들에게 자동차 정비 교육을 하고요. 또 훈련을 마친 사람들에게 지역 내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출소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경력을 쌓도록 돕고 있어요.”

마틴 씨는 아직 정비를 배우는 훈련생들에게도 월급을 준다고 하는데요. 훈련생들은 배우는 일도 일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급여를 주는 교육 센터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한다고 했습니다. 

[녹취: 마틴 슈워츠] “미국에 재소자가 200만 명이 넘습니다. 또 매년 60만 명 이상이 출소하죠. 그런데 출소자 가운데 약 75%가 5년~8년 사이에 다시 또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갑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직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돈을 벌지 못하고, 먹고 살지를 못하니 다시 또 지역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거죠.”

그래서 마틴 씨는 출소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요. 사람들로부터 중고차를 기부받아서 출소자들이 그 차를 고친 후 차가 필요한 가난한 지역 주민들에게 그 차를 선물로 주는 겁니다. 출소자들은 자신의 기술로 차를 고치는 것에 더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녹취: 마틴 슈워츠] “지난 2015년에 훈련 센터가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20명의 인턴이 우리 자동차 정비 훈련을 거쳐 갔는데요. 수료생 전원이 직장을 찾게 됐습니다. 다들 어엿한 기술자가 되어서 가족들 부양도 할 수 있게 됐고, 집도 살 수 있게 됐어요. 범죄자에서 지역 사회를 활발하게 움직이는 주인공들이 된 겁니다.”

션 씨 역시 풀서클 정비소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션 하워드 베이] “여기서 일하면서 어릴 적 여자 친구와 결혼도 했습니다. 처음 아내와 만난 게 12살 때이니까 24년 이상을 알고 지낸 사이인 거죠. 제가 어린 나이에 감옥에 가서 21년간 복역한 것도 알고 있고, 저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만, 제 아내는 저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가 돼줬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자동차 정비사라는 직업도 갖게 됐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도 있게 됐잖아요? 제 나름대로 성공을 이뤘다고 자부합니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