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폴.
레스 폴.

오늘의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미국 팝 음악의 판도를 바꾼 레스 폴에 대해 알아봅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팝의 판도를 바꾼 기타리스트, 레스 폴

현대 팝 음악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미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사람 레스 폴(les Paul)은 음악인이면서 발명가이기도 했습니다. 레스 폴이 만든 전자 기타와 여러 가지 녹음 방식은 팝 음악의 소리를 바꾸었고, 로큰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레스 폴은 1915년 6월 9일,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났습니다. 9살때 하모니카를 불고 라디오를 만들 정도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았습니다. 악보를 읽을 줄은 몰랐지만 어떤 음악을 듣고 나면 그걸 기억하고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땐 중서부 지방에서 활동하는 컨트리 밴드에 들어가 기타를 연주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라디오 방송 음악 프로에서도 연주했습니다. 1937년 그는 3인조 악단, 레스폴트리오를 조직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당시대 최고의 인기 가수 빙 크로스비 등 여러 연예인과 공연했습니다. 

전통적인 기타보다 소리가 오래 나는 기타를 만들고 싶어 하던 레스 폴은 1940년대 초 전자 기타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철로의 바닥에 까는 침목을 구해 평평한 판자를 만들고 그 위에 기타 줄을 달았습니다. 그런 다음 두개의 전자 픽업 장치를 연결했습니다. 픽업은 철로 된 현에서 나오는 진동을 전류로 바꾸어주는 장치입니다. 이는 앰프에 연결돼 소리를 키워줍니다. 전자 기타의 출현으로 연주자들은 훨씬 더 큰 소리로, 또 훨씬 더 정확하게 자신들의 음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988년 5월 레스 폴(오른쪽)이 자신이 디자인한 기타를 제임스 폴 매카트니(왼쪽)에게 전달하고 있다.
지난 1988년 5월 레스 폴(오른쪽)이 자신이 디자인한 기타를 제임스 폴 매카트니(왼쪽)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런 유형의 기타를 만든 사람은 레스 폴만이 아니었습니다. 리오 펜더(Leo Fender)라는 사람도 또 다른 형태의 전자 기타, ‘펜더 텔레캐스터(Fender Telecaster)’를 개발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의 유명한 기타 제조 업체인 깁슨사는 레스 폴을 영입해 그의 특징을 살린 기타를 설계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52년 ‘깁슨 레스폴’(Gibson Lespaul)이라는 기타가 나왔습니다. 깁슨 레스폴 기타는 오늘날까지도 펜더사와 함께 미국 전자 기타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레스 폴은 1945년 여름, 컨트리 웨스턴 가수이면서 기타를 치는 메리 포드(Mary Ford)를 만났습니다. 함께 음악 활동을 하던 두 사람은 1949년 결혼했습니다. 이들이 부른 ‘바야 콘 디오스(Vaya con Dios)’는 세계적인 애창곡이 됐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50년대 레스 폴과 매리 포드는, ‘모킹버드언덕(Mockingbird Hill)’을 비롯한 여러 힛트곡을 냈습니다. 레스 폴과 메리는 여러 해 동안 미국 라디오와 텔리비젼의 ‘레스폴쇼’에 고정 출연했습니다. 

인기 행진을 이어가는 중에도 레스 폴은 집에 스튜디오를 만들어 놓고 계속 새로운 녹음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전자 효과로 특별한 소리를 만들어 음악에 삽입하는 기술, 8개의 트랙에 녹음을 하고 각 채널 음을 따로 재생할 수 있도록 한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공연자들이 자신의 곡에 메아리를 넣거나 반복할 수 있게 하는 음향기기 레스폴버라이져(Les Paulverizer)도 만들었습니다. 
1970년대 컨트리 음악 기타리스트 쳇 앳킨스(Chet Atkins)와 함께 낸 ‘체스터와 레스터(Chester and Lester)’는 음반 예술계 최고의 상인 그래미상을 받았습니다. 

연로해 지면서도 음악 활동을 계속한 레스 폴은 1980년대 초부터 뉴욕시에 있는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망하기 불과 몇 주 전까지도 매주 열리는 공연에 빠지지 않고 출연했습니다.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1988년 레스 폴의 이름을 헌정했습니다. 그는 그래미 명예의 전당, 작곡가 명예의 전당, 전미 발명가 명예의 전당 등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로큰롤과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오른 사람은 레스 폴이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의 마지막 음반 ‘레스 폴과 친구들 (Les Paul and Friends: American Made World Played)’은 2005년 90세 생일을 기념해 나왔습니다. 미국 최고의 기타 연주자들이 등장한 이 음반은 레스 폴에게 두 개의 그래미상을 더 선물했습니다. 

레스 폴은 2009년 8월 뉴욕에서 94세로 타계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고향인 위스콘신 주 와우케샤에 묻혔습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함께 음악을 했던 많은 사람은 기타 연주자로서만이 아니라 발명가로서 그가 남긴 유산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