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에모리대학교.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에모리대학교.

이 시간에는 미국의 대학들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 있는 명문 사립대학교인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라디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오디오] 에모리대학교 (1)

"남부를 대표하는 3대 명문"

에모리대학교는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주도, 애틀랜타시에 있는 사립대학교입니다. 듀크, 밴더빌트와 함께 남부를 대표하는 3대 명문 사학 중 하나인데요. 에모리대학교가 어느 정도 수준의 대학인지, 미국에서 38년간 대학 진학 상담과 교육을 해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의 도움말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에모리 대학교는 매년 미국 대학들의 순위를 발표하는 정평 높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US News and World Report)' 2020년 자료에서 21위에 올랐습니다. 에모리대학교에 근무하는 총인원은 교수, 교직원, 대학병원 근무자 모두를 포함해서 3만 명이 넘고, 2018년도 기준, 1년 대학 운영예산이 21억 달러, 대학병원 운영예산이 35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으로 부유한 대학입니다."

"감리교 목사 존 에모리를 기리며 세워진 대학" 

에모리대학교는 1836년 기독교의 한 분파인 감리교 교단이 세운 학교에서 출발합니다. 에모리대학이라는 이름은 당시 조지아주에서 감리교 감독으로 활동했던 '존 에모리(John Emory)' 목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라고 하는데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와 함께 당시 시대 배경 살펴볼까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대륙에서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학 중흥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 거주하고 있던 감리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영적, 지적 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조지아주에는 지금의 애틀랜타라고 하는 대도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던 남부 지역은 미래를 향한 밝은 희망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으며 오직 고난과 역경, 그리고 난잡하기 이를 데 없는 불법이 자행되던 황무지였습니다. "

이때 활약했던 사람이 바로 존 에모리 목사였다고 하네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그 무렵 영국으로부터 감리교 신자 여러 가정이 조지아 지역에 이주해 이곳에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존 웨슬레가 학문했던, 본국 옥스퍼드대학교와 버금가는 고등교육기관을 세워야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개척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감리교 감독이었던 존 에모리 목사는 식민지 남부 정착민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주고, 후세대에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에모리 목사는 애석하게도 1835년, 지역 선교 활동을 하던 중 마차 사고를 당해 사망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큰 슬픔과 절망을 딛고 이듬해 에모리 목사를 기념해 대학 이름을 에모리칼리지로 (Emory College)로 정하고 주 의회의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에모리대학교의 첫 수업은 그로부터 2년 후, 3명의 교수로 시작됐는데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2년 후인 1838년 이 대학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그나시우스 알폰소 휴’ 총장과 3명의 교수진이 15명의 초기 신입생들을 받아 첫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15명의 초기 신입생들 중에는 훗날 에모리대학의 총장이 된 오즈번 스미스와 에모리대학교 교수가 된 조지 스톤 같은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모리 대학교의 매더슨 리딩룸.
에모리 대학교의 매더슨 리딩룸.

"공부와 노동을 병행하는 학교"

그런데요. 초창기 에모리대학교의 학생들은 독특하게도 공부와 노동을 병행해야 했다고 합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그들이 초기에 설립한 교육기관은 학생들이 공부와 노동을 해야 하는 학교로서, 낮 동안 교실에서 공부함과 동시에 농장 일도 함께해야만 했습니다. 교수들의 감독과 지도하에 학생들은 곡식을 재배해서 식량으로 충당해야 했으며 생활비도 벌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난해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에 있지 못한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었으며, 학생들 모두는 근면 정신을 몸소 실천하면서 인격, 지적 향상을 위한 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모리대학교는 설립 후 50년 넘게 빈약한 자산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했는데요. 특히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수많은 학생이 전장에 투입되면서는 폐교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철도사업가이자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조지 세이니 (George Seney)' 같은 사람의 기부로 남부를 대표하는 대학의 하나로 성장해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

"코카콜라 대학교"

오늘날 에모리대학교는 '코카콜라 대학교'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 탄산음료의 대명사인 코카콜라가 1880년대 미국 남부 조지아의 한 허름한 약국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코카콜라사와 에모리대학교,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요?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설명 한 번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당시 코카콜라의 설립자였던 에이사 캔들러(Asa Candler)와 그의 동생이자 에모리대학교의 총장이었던 워런 캔들러(Warren Candler)는 감리교단 측에, 애틀랜타시에 종합대학을 건립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100만 달러의 현금과 72ac에 달하는 토지를 기부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 조지아주 옥스퍼드에 있던 에모리대학교가 애틀랜타시로 이주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는 종합대학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설립 초기 이렇게 에모리대학교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던 코카콜라사는 20세기 들어서도 에모리대학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를 했다고 하네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아사 캔들러와 워런 캔들러가 거액의 기부금을 쾌척한 지 60년이 지난 1979년, 에모리 졸업생이면서 코카콜라사의 회장에 오른 로버트 우드러프(Robert Woodruff)가 1억 달러에 이르는 자신의 재산을 모교 에모리에 기증했습니다. 하지만 우드러프는 정작 기증식을 하는 기자회견장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로버트 우드러프의 이러한 거액의 기증에 힘입어 에모리대학교는 오늘날 동북부의 전통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들인 하버드, 예일, 코넬, 컬럼비아 등에 견줄만한 신흥 명문, '새 아이비(New Ivy)' 또는 '숨겨진 아이비(Hidden Ivy)'로 불리며, 남부 조지아주의 자랑이자 긍지가 되고 있습니다."

"남부의 연구형 중심대학"

조지아주의 자랑인 에모리대학교에는 지미 카터 대통령 기념 재단인 '카터센터'가 있습니다. 미국의 제39대 지미 카터 대통령이 바로 이 조지아주 출신이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같은 정부 기관도 에모리대학 캠퍼스에 붙어있어, 에모리대학교가 오늘날, 명실상부 남부의 대표적인 연구중심형 대학으로 우뚝 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하네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인류의 평화와 인권, 보건위생, 사랑의 집짓기 등 각종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는 카터센터, 또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유수한 정부·민간 기관들에 에모리 캠퍼스에 본부를 두고 연구의 중심지가 되고 있기 때문에 에모리대학교는 정부 예산과 민간 연구기금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연구중심형 대학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한국과의 인연"

에모리대학교는 아이비리그 대학교들만큼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뜻밖에 한국과는 아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대학입니다. 에모리대학교는 1888년에 첫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였는데요. 바로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윤치호입니다. 윤치호는 1893년 에모리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됐는데요. 다음 주에는 에모리대학교의 학교 현황 등 다양하고 유익한 이야기 좀 더 들려드리기로 하겠고요. 저는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