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를 돕는 양봉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재향군인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를 돕는 양봉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매년 11월 11일은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입니다. 참전용사의 봉사와 희생을 기리는 연방 공휴일인데요.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고 돌아온 군인 중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민간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참전 군인들을 위해 양봉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데요.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군인들이 벌을 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보다 생산적으로 바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네요.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주에 있는 재향 군인들을 위한 양봉장을 찾아가 보죠. 

라디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오디오] 재향군인들을 위한 양봉 사업...할리우드의 아시아 배우들

“첫 번째 이야기, 재향군인들을 위한 양봉 재활 프로그램”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 있는 한 꿀벌 농장. 망사로 된 양봉 모자에 복장까지 다 갖춰 입은 참전 군인들이 벌을 치고 있습니다. 뉴햄프셔주 재향군인센터에서는 '여가 치료'의 일환으로 이렇게 양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벌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벌을 치는 것이 재미있다는 참전 군인들. 6개월 전 처음 시작된 양봉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은 이제 여왕벌과 일벌은 물론 꿀에 대해서도 지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녹취: 빈스 이털로] “저는 양봉장에 오는 걸 좋아합니다. 벌을 치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빈스 이털로 씨는 군대에서 거의 40년을 보낸 군인 출신으로 이라크에 두 번 파병됐었는데요. 이라크 파병 당시, 자신의 차량 바로 옆에서 길거리 폭탄이 터지면서 인생에 변화를 맞았다고 했습니다. 

[녹취: 빈스 이털로] “당시 폭탄 하나가 제 얼굴 바로 앞에서 터졌습니다. 정말 큰 충격이었죠. 사실 그때 일을 자세히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에게 너무나 큰 아픔을 남긴 사건이라서요.”

이후 이털로 씨는 PTSD라고 부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생명의 위협이 되는 일 등 정신적 충격을 동반한 사고를 겪은 후 심적 외상을 받아 나타나는 질환인데요. 빈스 씨의 경우 그 사건 이후 큰 소리를 견딜 수 없게 됐다고 하네요.

빈스 씨는 상담도 받고 또 봉사견을 통해 마음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많이 덜어냈지만, 특히 꿀벌들이 날면서 내는 작은 소리에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녹취: 빈스 이털로] “벌을 치는 게 저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장기간 효과를 본 게 바로 양봉이에요.”

양봉은 여군 출신인 웬디 짐머만 씨가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웬디 씨는 25년 전 군 복무 당시 동료 군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녹취: 웬디 짐머만] “과거의 아픈 경험은 지금까지도 제 일상생활과 육아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저를 아주 쇠약하게 만든 사건이죠.”

하지만 웬디 씨는 벌을 치면서 과거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웬디 짐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벌을 치는 게 무척 재미있습니다. 벌을 치면서 불안으로 가득 찼던 내 안의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있어요.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여가 치료사인 발레리 카너 씨는 양봉이 참전 군인들에게 집중력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자신감도 느끼게 해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발레리 카터] “벌을 치다 보면 벌떼에 신경을 집중해야 합니다. 약 7만 마리에 달하는 벌을 관리해야 하니 다른데 신경을 쓸 수가 없어요.”

[녹취: 빈스 이털로] “저는 계속 양봉을 하고 싶습니다. 벌을 치고 나면 또 금방 벌이 보고 싶어요. 머릿속으로 늘 벌들 생각만 하고 있다니까요?”

참전군인들의 머릿속을 괴롭혔던 불안과 걱정, 충격을 몰아낸 꿀벌들은 이제 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아서 동 씨가 집필한 책의 한 페이지.
아서 동 씨가 집필한 책의 한 페이지.

“두 번째 이야기, 할리우드의 아시아 배우 변천사” 

할리우드는 미국 영화 제작의 본고장이자 미 서부의 대도시 LA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적 관광지입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중심에는 ‘차이니즈시어터(TCL Chinese Theatre)’ 즉 ‘중국극장’이 있는데요. 1927년에 개관한 이 극장은 중국풍의 외관을 한 할리우드의 명소입니다. 

[녹취: 아서 동] “영화 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 산업 초기 때부터 이국적이면서도 낯선 매력을 지닌 중국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서 동 씨는 중국계 영화 제작자로 할리우드의 중국 배우들에 관한 영화와 책을 집필했습니다. 동 씨는 과거 할리우드 영화계는 동양 문화에 큰 매력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1920년대~40년대 영화에서 그려진 중국인은 주로 문제가 많거나 단순한 존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아서 동] “과거 할리우드 영화 속의 중국인 배역은 남자의 경우 주로 하인이나 막노동꾼, 세탁소 직원이었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창녀가 아니면 하인이었죠.”

당시에는 중국인 배역이라고 해도 백인들이 분장을 하고 동양인처럼 연기했다고 하는데요. 사회학자인 낸시 왕 유엔 씨는 당시 '옐로우페이스(yellow face)' 배우들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녹취: 낸시 왕 유엔] “옐로우페이스는 백인 배우들이 아시아인 역할을 연기하는 걸 일컫는 말입니다. 동양인을 연기하기 위해 배우의 얼굴을 노랗게 분장하는 데에서 시작된 용어이죠. 또 눈도 옆으로 찢어 올리는 식으로 동양인의 얼굴을 표현했어요.”

1965년 영화 ‘푸만추의 얼굴’에서 푸만추는 중국인 악당이었는데요. 백인 배우가 분장을 한 채 푸만추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 중국계 탐정으로 큰 인기를 누린 ‘찰리 챈’ 역할 역시 백인이 연기했습니다.

[녹취: 아서 동] “찰리 챈은 똑똑하고 현명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양인에 대한 서양인의 편견을 보여주는, 아주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그 누구보다 똑똑하지만 말수가 적은 모습은 전형적인 동양인의 모습이었고요. 거기다 엉터리 영어까지 구사했습니다.”

1937년,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중국인들의 삶을 다룬 펄 벅의 소설 ‘대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 ‘대지(The Good earth)’에는 아시아계 배우들이 출연하긴 했지만, 주요 배역은 다들 옐로우페이스 즉 동양인 분장을 한 백인들이 맡았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아시아계 배우들의 활약이 커지긴 했지만, 최근까지도 주요 아시아인 배역을 백인이 맡는 일명,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이라는 영화가 미국에서 크게 흥행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데요. 싱가포르 부잣집의 아들과 중국계 미국인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주요 배역을 포함한 거의 모든 배역과 감독 그리고 작가까지 모두 아시아계였지만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녹취: 아서 동]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관객은 물론 비평가들로부터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은 할리우드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영화감독이나 제작사들도 점점 성숙한 자세를 보이고 있고요. ‘옐로우페이스’나 ‘화이트워싱’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아시아계 배우들이 더 큰 활약을 할 수 있게 된 데는 이런 영화계 자체의 변화도 있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도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 낸시 왕 유엔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낸시 왕 유엔] “요즘은 배우들이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극장에 내걸리는 영화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영화 채널들이 생기면서 배우들이 자신을 알리고 또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거죠.”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인종이 아시아계인데요. 다음 세대 아시아계 배우들은 변화된 인식과 기술 환경에서, 아시아계라는 편견을 깨고, 자신들의 재능을 더 멋지게 발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