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캘리포니아에서 진 켈리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지난 1985년 캘리포니아에서 진 켈리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미국을 건설한 위대한 미국인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미국 최고의 춤꾼 진 켈리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라디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미국 최고의 춤꾼, 진 켈리

춤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중예술로 발전시킨 진 켈리는 뛰어난 춤꾼일 뿐만 아니라, 1940, 50년대 뮤지컬의 영웅이자 안무가로, 배우로, 감독으로, 다재다능하고 뛰어난 성취를 이룩한 인물이었습니다. 

본명이 유진 쿠란 켈리(Eugene Curran Kelly)인 진 켈리는 1912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진 켈리는 피츠버그대학교 (University of Pittsburgh)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1933년 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미국을 휩쓴 불황으로 여기저기서 막일을 전전하다 댄스 학교에서 춤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 지역의 연극단에서 감독을 하기도 하고 동생 프레드와 함께 출연도 했습니다. 

진 켈리는 27살 때인 1938년에는 뉴욕시로 옮겨갑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합창단의 일원으로 또 몇 가지 브로드웨이 쇼에서 댄서로 출연하다가 1940년에는 "팔 조이”(Pal Joey)라는 뮤지컬에서 주연을 맡게 됐습니다. 

뉴욕의 연예계 평론가들은 진 켈리가 노래와 춤뿐 아니라 무대에서 신뢰가 가는 연기를 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켈리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미국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에서 일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이에 따라 켈리는 1941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본격적으로 연예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진 켈리는 1944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켈리는 스탠리 도넨 감독과 함께 ‘커버걸(Cover Girl)’이라는 영화에서 대단히 창의적인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진 켈리의 춤 추는 장면을 두 개를 찍고, 그것을 합친 것입니다. 

영상에서는 두 명의 진 켈리가 춤을 춥니다. 두 켈리는 서로 쫓고, 계단을 내려가고, 상대방의 머리 위로 뛰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진 켈리는 나중에 자신은 그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영화에서의 춤은 무대에서의 춤과 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켈리는 카메라용 춤 동작을 만들어 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진 켈리는 오늘날 같으면 흔한 댄스 촬영 기법을 1945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즉 화면에 만화의 주인공을 함께 등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영화는 ‘닻을 올려라(Anchors Aweigh)’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만화의 생쥐는 진 켈리와 흥겹게 춤을 춥니다. 그 장면은 단 8분짜리를 만드는데 당시 돈으로 무려 10만 달러가 들어갔습니다. 

진 켈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49년 또 하나의 혁신을 일으킵니다. ‘온더타운(On the Town)’이라는 영화를 제작하면서 실제 도시의 거리에서 촬영을 시도한 것입니다. 뮤지컬 영화는 보통 할리우드에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찍었습니다. 당시 영화 제작자들은 실제 거리에서 뮤지컬을 찍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On the Town’은 뉴욕시에 상륙한 세 명의 선원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진 켈리는 주인공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을 뉴욕시 이곳 저곳 현장에서 촬영하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 영화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진 켈리는 ‘On the Town’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영화는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이라는 노래로 시작됩니다. 

일부 평론가들은 진 켈리의 가장 큰 성공은 1951년 영화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최우수 영화, 노래, 댄스, 연기, 창작 댄스 등 아카데미상을 8개나 휩쓸었습니다. 이 영화는 17분 동안의 발레 댄스로 끝이 납니다. 영화에서 진 켈리는 레슬리 카슨과 함께 조지 거슈윈 작곡 ‘An American in Paris’에 맞추어 춤을 춥니다. 

진 켈리가 출연한 1952년에 개봉된 '사랑을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의 포스터.
진 켈리가 출연한 1952년에 개봉된 '사랑을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의 포스터.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은 진 켈리 최고의 영화는 1952년에 개봉된 ‘Singin' in the Rain’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사랑은 비를 타고’라고 번역했습니다. 진 켈리는 많은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혼자 사랑에 빠진 행복감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뮤지컬 영화로는 최후의 명작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 같은 명작이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 켈리가 출연한 영화는 모두 45개였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는 악극도 감독했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라는 쇼로 에미상도 받았습니다. 진 켈리는 ‘That's Entertainment’라는 영화 시리즈에서 또 한 명의 유명 댄서 프레드 애스테어와 함께 출연한 것도 화제였습니다. 

애스테어는 진 켈리가 춤을 시작했을 때 이미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대 선배였습니다. 진 켈리는 애스테어가 너무나 춤을 잘 추는 큰 인물이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진 켈리는 애스테어의 춤이 정장에 더 어울리는 반면 자신의 춤은 바지와 셔츠를 입고 출 때 더 어울린다고 자평했습니다. 

진 켈리는 1996년 2월 2일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83세. 켈리는 생전에 케네디센터와 미국영화연구소(AFI) 평생공로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최고의 예술가 훈장(American National Medal of Arts)을 켈리에게 수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현대무용, 탭, 발레 등을 운동처럼 혼합해 새로운 종류의 미국 춤을 창조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늘 겸손했던 진 켈리는 자신은 그처럼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노래하고 춤추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