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카할루이 인근의 사탕수수밭. (자료사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카할루이 인근의 사탕수수밭. (자료사진)

안녕하세요, 타박타박 미국 여행 박영서입니다. 북태평양에 있는 섬, 하와이는 오랫동안 미국에 오는 아시아 이민자들의 관문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설탕 수요가 늘면서 19세기 하와이에는 사탕수수농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섰고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농장주들이 아시아에서 일꾼들을 불러왔기 때문인데요. 이역만리 태평양을 건너 낯선 땅에 도착한 이들 아시아 이민자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드넓은 사탕수수밭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냈습니다. 네, 미국 곳곳의 다양한 문화와 풍물, 이야깃거리 찾아가는 타박타박 미국여행, 오늘은 북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로 가보겠습니다. 

라디오
[타박타박 미국 여행 오디오] 사탕수수밭서 일군 아메리칸 드림, 하와이

지난 1월 중순, 탄도미사일이 하와이로 향하고 있으니 즉각 대피하라는 경보가 발동했습니다. 38분 만에 잘못된 경보였던 걸로 판명 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핵미사일의 공포로 떨어야 했는데요. 하와이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하와이 터줏대감, 이소영 씨에게 당시의 경험담을 들어봤습니다. 

[녹취: 이소영 하와이 한인문인협회 회장] "그 때 제 휴대전화기로 경보 왔고 남편에도 왔었는데 저희는 쳐다보고 웃으면서 이거 무슨 실수네요 했어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해요. 만일 미사일이 북에서 쏴서 오면 분명히 미국에서 그런 미사일 정도는 중간에 떨어뜨려서 태평양으로 떨어지게 한다, 그런 확신은 확실히 갖고 있고요. 150%, 200% 확신합니다."

하와이에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태평양사령부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것도 이들 하와이 주민이 안심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네요. 

하와이 인구는 2017년 기준 약 143만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와이는 특이하게도 아시아계가 다수고, 백인이 소수인 주입니다. 2017년 조사를 보면, 아시안이 38%, 백인이 25%로 나타났는데요.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 아시아계가 60%를 넘은 적도 있습니다. 

하와이에 아시안들이 특히 많은 건 19세기 말, 하와이에 있는 사탕수수 농장, 파인애플 농장의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지면서, 중국, 일본, 한국, 필리핀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많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와이에는 특히 일본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여행 전문가 조앤 한 씨 이야기 들어보시죠. 

[녹취: 조앤 한 씨] "예를 들어 오아후섬에 있는 상점에 가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가도 거의 일본말로 하고, 원주민이나 외부에서 와서 경제를 하는 사람들도 일본말로 하고, 일본 식당도 많고, 여행하는 사람들조차 일본 사람들이 많아요. 일본 문화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현재 하와이에 사는 아시안은 필리핀계가 가장 많고요. 그 뒤를 일본, 중국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데요.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일본계가 가장 많았다고 해요. 일본 사람들은 특히 하와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뭘까. 이소영 씨의 설명입니다. 

[녹취: 이소영 씨] "일본도 섬나라고 하와이도 섬이다 보니까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공통점이 많아서 마음 편하게 느끼는 게 있을 듯하고요. 그리고 하와이 한국 이민 역사가 올해로 115주년이 됐는데, 일본은 200년 가까이 됩니다. 한국보다 역사가 훨씬 더 깊습니다. 일본 사람이 하와이 전체 주민의 4분의 1까지 된 적도 있는데요. 지금은 많이 줄어서 17% 정도입니다. 그래도 일본 사람 많고, 일본사람과의 혼혈도 많습니다. 같은 섬이라 분위기는 비슷하면서 열대기 때문에 원색적인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하와이는 일본과 불편한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는 바람에 미국이 참전하게 됐고 태평양전쟁으로 비화하게 됐기 때문인데요. 혹시 하와이 사람들, 일본인들이 불편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하와이는 아픈 역사를 함께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소영 씨가 들려주는 하와이 역사입니다. 

[녹취: 이소영 씨] "미국 정부가 화가 나서, 미국에 와서 살던 일본인들을 집에서 나오게 해 강제 수용소에 집단수용했어요. 그때 젊은 일본 남자들, 16살부터 23~25살 되는 청년들이 미국에 충성하고 미국을 위해 싸우기 위해 442부대를 만들었어요. 그 사람들은 미국 국민으로서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절박감이 있었어요. 442부대는 독일과 싸울 때 미국 부대가 가지 못하는 곳을 전멸을 무릅쓰고 다니면서 충성을 보였어요. 그래서 2차 대전 끝나고, 442부대와 일본계 미국인을 인정하게 되고, 워싱턴포스트도 대서특필하고 그랬습니다. "

이들의 전공으로 그 전까지 미국인들 사이에 팽배했던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반감이 누그러질 수 있었고요.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던 일본계 미국인들이 풀려나는 단초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아시아인들이 시민권을 갖게 된 것도,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442부대의 공헌이 크다고 하네요.

[녹취: 이소영 씨] "그 전에는 안 줬는데, 일본 사람들만 줄 수 없으니까, 중국, 아시아 사람들도 시민권을 얻게 된 거예요. 일본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미국에 충성을 보였고...그래서 아무도 진주만 가서, 일본 사람들이 그때 그랬다는 미움과 증오심 같은 것이 없어요. 모두가 함께 미국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켜가며 그래 줘서 고맙다 이런 분위기예요."

하와이 한인들의 이민 역사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이민 역사와 시작점이 같습니다. 

1902년 12월 100여 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을 실은 배가 한국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해 이듬해 1903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하면서 미주 한인 이민 역사는 시작됐는데요. 그 때문에 하와이에 사는 한인들은 이민 종가라는 자부심이 큽니다. 

이역만리 태평양을 건너온 하와이 한국 노동자들은, 당시 일본의 식민치하에 있던 한국의 독립을 위해 사탕수수밭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며 번 돈을 독립 자금으로 보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현재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인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녹취: 이소영 씨] "필리핀계가 25%, 일본계가 17%, 한국은 2%가 안 돼요. 등록 인구가 약 4만 명이니까 많으면 6만 명 정도? 그러니까 한인들은 아주 적은 거죠. 대부분 소규모 상업을 하고, 호놀룰루를 중심으로 살고요. 다른 섬, 시골 같은 데 가면 한국 사람 전혀 못 만나요. "

그래도 길게는 4대, 5대까지 내려가는 한국의 후손들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계승하려는 노력은 하와이에서도 펼쳐진다고 하는데요. 이소영 하와이 한국문인협회 회장의 말입니다. 

[녹취: 이소영 씨] "한국어 학교도 있고요. 한인 단체들이 있어서 한글 글짓기도 하고...지난 2017년으로 문인회가 5년째 호놀룰루 시청 안에 시화전도 하고 있어요. 어린이 동시도 있고요. 한국어로 쓴 거죠. 영어도 번역해서 넣고...꽤 잘해요. 하와이에는 지금 한인 문화센터가 없는데 돈 걷고 도망가고 그래서...일본, 중국, 필리핀 다 문화센터가 있는데 한국은 없어요. 그래서 부끄러워들 하는데 지금 추진 중이에요. 잘 되겠죠"

이제는 하와이에서 거주한 세월이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더 길다는 이소영 씨...하와이 자랑을 해보라고 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녹취: 이소영 씨]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받고...하와이에서 산 게 제일 오래 돼요. 저는 하와이가 고향이고요. 죽을 땐 여기서 죽고 싶어요. 하와이는 첫째 사람들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마음이 아름다워요. 항상 여름 같고... 자연적이고 행복하고 천천히... 내 시간을 내가 즐기면서, 내가 생각하면서,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참 좋아합니다"

미국 곳곳의 다양한 문화와 풍물, 이야깃거리 찾아가는 타박타박 미국여행, 시간이 다 됐네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