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소유한 사업체 두곳중 하나인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작업하고 있는 야샤 이스마일로프(오른쪽).
자신이 소유한 사업체 두곳중 하나인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작업하고 있는 야샤 이스마일로프(오른쪽).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미국에서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유경제 체제에서 누구나 기술과 자본금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에는 2천800만개 이상의 소규모 사업체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 많은 사업체 사장님 가운데는 난민 출신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야샤 이스마일로프 씨 역시 그 중 한 명입니다.

라디오
야샤 이스마일로프(1)

 

[현장음: 버지니아 샬롯츠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2시간 반 정도 운전해 내려가면 버지니아 주의 샬롯츠빌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조용하고 깨끗한 이 동네에는 무려 3천 명 이상의 난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들 난민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현장음: 자동차 정비소]

조용한 샬롯츠빌 길가에 유난히 많은 차가 드나드는 이곳, ‘래리의 자동차정비소’라는 푯말이 보이는데요. 이곳의 주인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야샤 이스마일로프 씨입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우리 동네에서 아무도 못 고치는 차는 다 우리 정비소로 오죠. 고객들도 이제 우리가 못 고치는 차가 없다는 걸 아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정비소를 많이 찾으시는 거겠죠? 자동차 정비 사업이 아주 잘 됩니다. ”

야샤 씨는 정비소를 찾은 고객의 차를 꼼꼼하게 들여다봅니다. 어떤 점이 문제인지, 어떤 점이 불편한지 물어보고는 각종 공구를 가져다가 수리를 시작하죠.

[현장음: 정비소]

인터넷에서도 야샤 씨의 정비소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능숙한 영어로 고객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여유가 넘치지만, 야샤 씨의 처음 미국 정착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난민들처럼 말이죠.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내 이름은 야샤 이스마일로프입니다. 1982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서 5살 때 온 가족이 러시아로 이주했어요. 저는 메스케티 투르크 족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인데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 민족에 대한 차별과 핍박이 심했습니다. 1989년에 투르크 족 대학살이 일어났고요. 우리 가족은 결국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러시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메스케티 투르크 족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대에 터키의 국경과 인접하고 있던 메스케티, 지금의 조지아에 이주해 와서 살던 터키인들이데요. 1940년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들을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죠.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차별을 받았던 건데요. 야샤 씨 가족은 결국 러시아로 건너갔지만, 고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이웃으로 만난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투르크 족에 대해 차별정책을 펼쳤죠. 그래서 15년 동안 러시아에 살다가 또 도망치듯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2004년, 미국 정부가 메스케티 투르크 족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야샤 씨 가족은 미국에 난민 신분으로 올 수 있었는데요. 당시 야샤 씨의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저와 부모님, 형제들 모두 2005년에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오게 됐어요. 처음 정착한 곳이 지금도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 샬롯츠빌이지요. 난민단체인 국제난민협회(IRC)가 저희를 샬롯츠빌로 데려가 주면서 살기 좋은 곳이라며, 우리도 이 마을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정말 사람들도 친절하고, 환경도 좋고, 살기 좋은 곳이었어요.”

야샤 씨는 처음 샬롯츠빌에 왔을 때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샬롯츠빌에 왔을 때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어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가 직접 와보니까 러시아와 많이 달랐습니다. 무엇을 하든 아무런 제약이 없이 자유로웠고 무엇보다 안전했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여러모로 러시아에 있을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 가야 하는 야샤 씨에겐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말도 못 하는데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죠.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미국에 왔을 때 언어가 제일 힘들었어요. 영어를 전혀 못 했으니까요.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만 했어요. 물론 지금까지도 영어 공부하고 있죠. 아무튼, 언어가 안되니까 처음엔 영어를 잘 못 해도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처음 제가 가졌던 직업은 페인트공이었어요. 집이나 상업 건물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이었죠. 그러다가 에어컨 그러니까 냉방기 설치 일도 잠시 했고요. 이후 전기공으로도 일했습니다. 러시아에 있을 때 전기 일을 배웠다보니 전기기술자 일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한 2년 동안 일했죠.”

야샤 씨는 이후 래리라는 사람이 운영하던 래리의 자동차 정비소를 인수하게 되는데요. 미국에 온 지 3년 만이었습니다.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2008년에 정비소를 시작했어요. 사장님이 된 거죠. 자동차 정비를 하는 작은 공장인데요. 온 가족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서 자동차 정비소를 열게 됐다고 많이들 물어보는데 제가 러시아에 있을 때 자동차 판매점에서 3년간 일했거든요. 그때 자동차 정비도 어깨너머로 배웠죠. 또 전기기술도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정비소를 인수하게 된 것 같아요.”

[현장음: 자동차 정비소]

정비소에는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함께 러시아어로 하는 대화 소리로 늘 시끌벅적합니다. 가족들과 다른 러시아 출신 다른 난민들을 고용해 일하기 때문인데요. 차를 찾아가는 고객들의 표정에서는 만족감이 넘칩니다.

[현장음: 자동차 정비소]

[녹취: 야샤 이스마일로프] “지금 우리 정비소의 직원은 모두 7명이에요. 한 달에 150대 정도 수리해요. 더 많이 할 때도 있고요. 이제는 단골 손님도 제법 있고요. 다들 우리 정비소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온 지 3년 만에 사업체를 시작하게 된 야샤 씨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역시 난민 출신 아내와 가정을 이뤘고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이 사업체 역시 성공을 거두면서 지역에서 인정받는 사업가가 됐는데요.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러시아 출신 사업가 야샤 이스마일로프 씨의 첫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야샤 씨의 성공비결과 또 다른 도전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야샤 씨 만의 아메리칸 드림을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