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복도에 걸어놓은 자신의 미술 작품들 앞에 선 루크만 아흐마드.
직장 복도에 걸어놓은 자신의 미술 작품들 앞에 선 루크만 아흐마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로 불립니다. 피부색도, 문화도, 언어도 다른,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이죠. 이민자들이 미국에 오기까지, 사연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좀 더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과 전쟁, 때로는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온 사람들. 바로 난민들인데요.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진행을 맡은 김현숙입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 봄 개편을 맞아 새롭게 여러분을 찾아가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 자유를 찾아 미국에 온 루크만 아흐마드 씨입니다.

라디오
루크만 아흐마드 (1)

 

[현장음: 행사장]

워싱턴 DC의 한 행사장. 사회자가 서 있는 무대 옆에 커다란 캔버스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종이 앞에 한 남성이 서 있었는데요. 사회자는 이 남성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릴 것이고, 행사가 끝나면 그림을 공개하겠다고 말했죠.

[현장음: 행사장]

2시간여의 시간이 흐르고 이 남성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공개하자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노란색 옷을 입은 여성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있고, 하늘 위에는 태양이 빛나고, 그 아래로는 워싱턴 DC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을 화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장음: 행사장]

자신은 이렇게 미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고향인 시리아에선 매일 총성이 끊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언젠가 시리아에도 자유의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는 겁니다.

붓과 물감으로 자유를 그려낸 남성. 바로 오늘의 주인공 루크만 아흐마드 씨였습니다. 루크만 씨는 이렇게 그림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마이크 앞에서도 자유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소리, VOA의 쿠르드어 방송에서 일하는 방송인이기도 했는데요. 루크만 씨를 직접 한번 찾아가 봤습니다.

[현장음: 현장 복도]

낯선 복도를 따라 들어선 쿠르드어 방송 사무실. 유난히도 많은 그림이 붙어 있는 책상을 보자마자 루크만 씨 자리라는 걸 알 수 있었죠.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루크만 씨. 예술가로서 강한 인상을 풍길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현장음: 방송 녹음실]

루크만 씨는 자신이 매주 방송을 진행하는 녹음실로 안내했는데요. 중동 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 청취자들에게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루크만 씨가 이날만큼은 북한의 청취자들을 위해 마이크 앞에 앉았습니다. 루크만 씨는 어떤 사연으로 이곳 미국에 오게 됐을까요?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루크만 아흐마드입니다. 저는 2010년에 미국에 왔고요. 지금은 워싱턴 DC 인근에 살고 있습니다. 시리아를 떠날 당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국민을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쿠르드 족이거든요. 쿠르드 족은 터키와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이렇게 네 나라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민족인데요. 시리아에 귀속해 살면서도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쿠르드인들을 시리아 정권은 좋게 보지 않았고 무척 탄압했습니다.”

시리아에서 있을 때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는 루크만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며 가끔 전시회도 열었다는데요. 하지만 바로 그림 때문에 루크만 씨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당시 시리아 정권은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 적대적인 그 어떤 활동도 제지했죠. 그런데 그들이 제 그림을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정부가 지시하는 그림이나 풍경화 정도만 그릴 수 있었는데 저는 추상화를 그렸거든요. 하지만 제 그림에 담긴 자유에 대한 메시지가 문제가 된 거였습니다. 결국 전시회가 끝나고는 제가 사는 동네에서 차로 10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끌려가서 조사를 받게 됐어요. 가까스로 풀려 나오긴 했지만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넌 이제 정부의 감시망 안에 들어갔어. 너는 시리아를 떠나야 해.’ 라고요.”

그래서 루크만 씨는 2008년 시리아의 국경을 넘어 터키로 가게 됩니다. 부모님과 11명의 형제자매를 뒤로 한 채, 시리아인인 아내와 단둘이서 말이죠. 하지만 루크만 씨는 터키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제가 쿠르드 족이잖아요? 터키에서도 소수민족인 데다가 쿠르드족 여성과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했는데 그게 또 문제가 돼서 터키 정부로부터도 감시를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아내의 오빠가 미국에 살고 있었거든요. 그 형님이 제 그림을 보고는 미국에 와서 화가로 활동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한 게 생각난 겁니다. 생각해 보니 미국은 자유의 나라이고, 저의 꿈을 이룰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 정치적 망명 신청을 했고, 이를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2010년에 미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독재 정권을 피해, 망명자로 미국에 오게 된 루크만 씨, 하지만 미국에서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미국에 왔을 때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직업도 없었고요. 친구도 없었죠. 제가 가진 거라곤 그림 그리는 재능밖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밑바닥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피자 배달도 하고, 건축현장에서 막노동도 했습니다. 식당에서도 일하고, 호텔에서도 일했는데요. 웨이터라고 하는 접대원도 아닌 웨이터 보조로, 그릇을 치우고 식탁을 정리하는 버스보이 일을 했었어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루크만 씨의 여정은 다른 많은 이민자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버스보이로 식탁을 닦던 루크만 씨에게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 찾아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당시엔 여유롭게 그림을 그릴 시간도, 돈도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쉬는 시간만 되면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디 빈 종이만 보이면 그림을 그렸죠. 신문에도 그리고, 종이가 없으면 허공에다가 막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호텔의 매니저, 관리인이 우연히 제 그림을 보게 된 겁니다.”

그 매니저는 루크만 씨의 실력에 깜짝 놀라서 한 프로그램에 동참하게 하는데요. 다름 아닌 호텔 직원들의 재능을 뽐내는 행사였습니다.  

[녹취: 루크만 아흐마드] “호텔 직원들의 장기를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행사였어요. 대부분 초밥 만들기, 와인 잘 고르기 뭐 그런 실력을 보여줬는데, 저는 그림 실력을 뽐내게 된 겁니다. 호텔 커피숍에 앉은 손님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또 시리아에서 가지고 온 전통 악기로 연주도 했는데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큰 성공을 거둔 거죠.”

[현장음: 루크만 씨 악기 연주]

호텔에서 행주를 손에 쥐고 식탁을 닦던 루크만 씨 손에 오랜만에 붓이 쥐어지자 루크만 씨의 재능이 마법처럼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루크만 씨의 아메리칸 드림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네,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시리아 출신 이민자 루크만 아흐마드 씨의 이야기 만나봤습니다. 다음 주에는 루크만 씨의 미국 정착 과정과 함께 예술가로서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텐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