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지난 1월 불법입국 혐의로 억류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에 대해 8년 노동교화형과 벌금 7천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북한이 벌금형을 선고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데요, 부족한 현금을 확보하는 한편 미-북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의도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 1월 불법입국 혐의로 억류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에 대해 8년의 노동교화형과 7천 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습니다.

통신은 “6일 중앙재판소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조선민족 적대죄와 불법 국경출입죄에 대한 심리를 진행해 유죄가 확정됐다”며 “본인도 기소 사실을 전부 인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곰즈 씨의 재판에는 미국의 이권을 보호하는 스웨덴 측의 요청에 따라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 대표들의 참관이 특례적으로 허용됐다고 통신은 밝혔습니다.

앞서 북한은 지난 달 22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해당기관이 불법입국한 미국인에 대한 범죄자료들이 확정됨에 따라 재판에 기소하기로 했다고 밝혔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북한 법 전문가들은 북한이 거액의 벌금형을 선고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벌금은 북한 돈 7천만원으로 북한 공식 환율인 1달러 당 1백원으로 따져도 70만 달러, 한국 돈으론 7억8천만원에 달하는 큰 액수입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이 벌금형을 선고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순순히 풀어줄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북한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렉스의 한명섭 변호사는 “북한 형법에 벌금형이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조치”라며 “스웨덴대사관 관계자가 참석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원칙적으로 벌금형이라는 게 자본주의 국가에 맞는 형벌이기 때문에 재산과 관련된 재산몰수형은 있으나 벌금형은 없습니다. 비공개로 재판한 게 아니라 인권이 보장된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또 정상적으로 재판했다는 사실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됩니다.”

이에 따라 추후 곰즈 씨의 석방 문제를 두고 미국과 협상할 때 벌금의 대납을 요구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경제난 속에 외화를 벌 수 있는 수단이 여의치 않자 억류 사태를 이용해 부족한 현금을 확보하려는 것 같다”며 “북한이 최근 미군 유해 발굴 작업 재개를 재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지지부진한 미-북 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중앙대 이조원 교수는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대내외에 북한의 위신을 과시하는 동시에 억류 사건을 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해 미국을 대화 테이블에 끌어내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6자회담 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을 해왔지만 평화협정 문제 등으로 교착상태에 있구요.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북한으로선 불법 방북자를 카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단 북한으로선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협상 계기라고 볼 수 있지요.”

북한은 앞서 불법입국한 미국 여기자 2 명에 대해서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 방북을 통해 억류 1백40일만에 석방함으로써 미-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활용한 전례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미국 정부 입장에선 대북 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규모 현금을 주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북한 당국에 억류 미국인에 대한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1996년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던 미국인 에번 헌지커 씨의 경우 석방 대가로 10만 달러의 벌금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숙박비 명목으로 5천 달러만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선 석방 과정에서 미-북 간 직접대화를 계기로 교착 상태에 빠진 북 핵 6자회담 재개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곰즈 씨는 지난 2001년 미 북동부 메인 주의 보드윈대학을 졸업했으며, 북한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