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장진호 전투를 주제로 한 기록영화가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올해 미국에서 선보입니다. 이 기록영화는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군 병사 185명의 실제 증언을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유미정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겨울. 한반도에서 가장 춥다는 북한의 개마고원 지역에는 11월 초 첫 눈이 내렸습니다.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첩첩산중에 한 밤 중이면 영하 45도까지 떨어지는 이 극한 지역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던 미 노병들이 60년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진 장진호 전투.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미군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영화가 한 젊은 미군의 열정으로 탄생됐습니다.

함경남도 장진의 일본식 지명인 ‘초신(Chosin)’이라는 제목의 이 기록영화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예비역 대위, 브라이언 이글레시아스 씨가 제작했습니다.

이글레시아스 씨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을 위해 동료 예비역 군인인 안톤 세틀러 씨와 함께 지난 해 미국 내 27개 주를 돌며 총 1백 85명의 장진호 전투 참전 미군 용사들을 인터뷰했습니다.

후퇴하는 북한 군을 추격해 38선을 넘은 미군 1사단 병력1만 5천 명은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4일까지 장진호 전투에서 12만 명의 중공군 9병단과 사투를 벌입니다.

한 참전용사는 산등성이로 중공군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마치 산등성이가 폭발한 것처럼 수 천, 수 만 명의 중공군이 끊임없이 밀려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동료의 시체에서 무기를 빼들거나 때로는 맨손으로 공격해 왔고, 그런 공격은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고 이 참전용사는 회고했습니다.

매일 밤 해가 지면 중공군의 나팔소리와 부상한 병사들의 울부짖음이 첩첩산중에 메아리 쳤습니다. 중공군의 공격은 동이 틀 때까지 밤새 계속됐습니다. 당시 18~19살 남짓의 어린 참전용사들은 밤이 지나고 다음 날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기도했다는 한 참전용사는, 어디에 신이 있는가 반문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고 말합니다. 신이 여기서 자신을 죽게 하느냐며, 하루만 더 해가 뜨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중공군에 투항하지 않고 흥남항까지 78마일의 기적적인 후퇴에 성공합니다. 미 해병대 창설 이후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은 4천 명을 잃었습니다.

미군의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은 병사는 지금까지 모두 131명인데 그 중 해병대에 수여된 훈장이 46명, 그리고 그 가운데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는 무려 14명에 이릅니다.

브라이언 이글레시아스 씨는 이제는 노령인 장진호 참전용사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들의 전쟁 경험을 세상에 알려 한국전쟁의 엄청난 비극을 진정으로 이해시키기를 원한다고 제작 취지를 밝혔습니다.

기록영화 ‘초신’은 현재 모든 촬영을 마치고 편집 과정에 있으며,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올해 선보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