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 해에도 북한으로부터는 1월1일 신년 공동사설을 시작으로 최근의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 씨 억류까지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009년 북한 뉴스’ 흐름을 최원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올 한 해 북한 뉴스는 상반기의 경우 미국인 여기자 억류 사태와 장거리 로켓 발사, 핵실험 등 북한 당국의 강경 조치로 대립과 갈등이 중심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사의 평양 방문 등 대화 국면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북한은 1월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대외 강경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노동신문’과 ‘조선인민군, ‘청년전위’ 등 관영매체들은 이날 ‘총 진군의 나팔 소리를 높이 울리며 진군하자’라는 제목의 공동사설에서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어 1월17일, 북한은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한국과의 ‘전면적 대결 태세’ 진입을 선언했습니다.

“외세를 등에 업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부정하고 대결의 길을 선택한 이상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부득불 이를 짓부수기 위한 전면 대결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월16일 김정일 위원장의 67회 생일을 맞아 ‘백두의 혈통 계승’을 강조하는 사설을 게재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결적 태도는 4월5일의 장거리 로켓 발사, 그리고 5월25일의 2차 핵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공화국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주체 98, 2009년 5월 25일 또 한 차례 지하 핵시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북한은 또 4월과 5월에 평양에서 핵실험을 축하하며 ‘축포야회’ 불꽃놀이를 열었습니다. 관측통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을 부각시키기 위해 불꽃놀이를 성대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2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대북 제제에 나섰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4월  1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의장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6월13일에는 대북 제재 내용을 담은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채택합니다.

“유엔 안보리 의장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안보리의 새로운 제재에 따라 6월 말에는 무기를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화물선 강남호가 버마를 향해 가다가 미 구축함의 추적을 받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무렵, 북한 축구는 6월 18일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전을 통과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로써 북한은 44년 만에 다시 월드컵 대회 본선에 나가게 됐습니다.

강경 일변도로 치닫던 북한은 7월을 기점으로 대화 쪽으로 선회하려는 조짐을 보입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신선호 대사는 7월24일, “미국과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협상을 벌이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8월4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그 결과 1백41일째 억류돼 있던 미국인 여기자2명이 즉각 석방됐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여기자 2 명이 미국에 돌아오기를 원했다며, 미국과 북한은 이제 양국 관계를 어떻게 해나갈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서울을 향해서도 평화공세를 벌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8월16일 평양에서 한국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났습니다. 이 면담을 계기로 북한은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를 석방하고 개성공단에 대한 통행 제한 조치를 풀었습니다.

이어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측근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서울에 보내 조문했습니다. 김기남 비서는 8월 23일 청와대를 예방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9월에는 추석을 맞아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렸습니다.

10월9일에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미-북 양자회담을 통해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다자 회담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친 순간이었습니다.

뒤이어 10월23일, 북한 외무성의 리근 미국 국장이 뉴욕에 도착 했습니다. 리근 국장은 11일 간 미국에 머물면서 성 김 북 핵 특사를 비롯한 미국 측 당국자들과 만나 미-북 간 양자대화 방식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11월10일, 북한이 미국 뿐아니라 한국과도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는 와중에 서해에서 남북한 해군 간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이날 북한 경비정 한 척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해 한국 해군과 교전이 벌어집니다. 한국 국방부의 발표입니다.

“금일 오전 11시27분쯤 북한 경비정이 서해 대청도 동방 6.3마일 지점에서 NLL을 1.2마일 침범해 우리 함대에서 수 차례 걸친 경고통신을 하였으나 계속 침범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고속정이 교전규칙에 따라 경고사격을 하자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해 와 이에 대응사격을 실시하여 북한 경비정을 퇴거 조치하였습니다. ’’

이어 북한은 11월30일, 옛날 돈과 새 돈을 1백대 1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주민들의 월급도 인상해 지급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화폐개혁 조치로 북한의 장마당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12월 들어서는 북한의 인권 상황이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부각됐습니다. 12월 7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 (UPR)에서는 강제 수용소 등 북한의 심각한 인권 유린 사태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12월8일,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사가 평양을 방문합니다. 보즈워스 특사는 사흘간 평양에 머물면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나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북 관계가 정상화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바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보즈워스 특사는 방북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평양에서 북한 당국자들과 실질적인 분위기 속에서 긍정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연말인 지난 24일,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 씨가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무단 입북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북 간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은 시점에 발생한 이 사건은 2010년 새해에도 양자 간 주요 관심사로 다뤄지면서, 앞으로 미-북 관계를 가늠할 풍향계 역할을 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