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 씨가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잠입해 들어간 지 사흘째가 됐지만 북한에선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 씨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저조한 데 대해 상당히 안타까워하며 몇 개월 전부터 지인들에게 월북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로버트 박 씨가 무단입북한 지 사흘째가 됐지만 아직 박 씨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 씨가 소속돼 활동했던 ‘자유와 생명 2009’ 관계자는 “박 씨가 강을 건넌 직후 북한 경비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면이 목격된 만큼 북한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은 28일 오후까지 박 씨의 입북 사실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고, 미국 정부도 박 씨의 입북 여부를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해 온 박 씨는 지난 해 6월 말 한국에 들어와 빈민구호 활동을 벌였으며, 9월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인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박 씨와 가까운 한 지인은 “노숙자들에게 입던 옷을 벗어주고 탈북자들이 ‘형님’이라고 따를 정도로 정이 많고 신앙심이 깊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평소 북한주민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전했습니다.

“거지를 만나거나 동냥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도해주고 돈을 주는 등 예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1인 시위로 북한주민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하고 싶다고 했어요. 해외 인권운동까지 로버트가 다 마무리하고 갔어요. 여기서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로버트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박 씨는 지난 달 초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서울역과 파주시 임진각 등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가 하면 북한주민들을 위한 기도회를 주도했습니다.

이 밖에 한국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 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 ICC에 회부하기 위한 서명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최근엔 북한주민을 위해 잇따라 단식기도를 강행해 몸이 상당히 야윈 상태였다고 단체 관계자들은 전했습니다.

'자유와 생명 2009' 관계자는 “박 씨는 한국 국민과 시민단체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이 적은 데 대해 상당히 안타까워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박 씨가 입북하기 두 달 전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인권 실상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혀와 만류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기 한 몸을 던져서라도 북한 사람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자긴 몸을 바치겠다, 북한으로 국경 넘어 들어가겠다는 소리를 두 달 전에 나한테 했었어요. 민족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남한 국민들이 북한인권에 대해서 그렇게 열의가 없는 부분에 대해서 많이 실망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마도 자기를 던짐으로 인해서 좀 더 북한인권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국민과 전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판단에서 그런 위험천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박 씨와 가까운 한 지인은 “올 7월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월북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조언을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박 씨는 입북 전 단체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지금도 7백만 명이 북한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고 25만 명 정도가 학대와 고문으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데도 국제사회는 침묵하고 있다”며 “국제법과 세계인권선언에 기초해 국제사회가 북한에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박 씨가 미국 국적인 만큼 한국 정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이번 사안이 미-북 관계의 변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북한 당국이 박 씨가 북한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비난한 점을 문제 삼아 12년 형을 선고했던 미국 여기자들보다 무거운 형벌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박 씨에 대해 강경한 조치를 취하거나 미-북 대화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모처럼 조성된 미-북 대화 분위기를 망치려 하진 않을 것”이라며 “박 씨를 강제추방 형식으로 석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 국면으로 접어든 만큼 이번 사안을 조용히 다루려 할 것”이라며 “박 씨와 관련해 내놓는 논평의 수위를 보면 북한이 이번 사안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