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현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싼 미-일 간의 갈등이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심각한 불신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쿄 현지를 연결해 자세한 소식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 우선 ‘미국 정부가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를 사실상 불신임했다’는 내용의 일본 언론 보도가 있었다구요?
 
답) 그렇습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문은 지난 21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후지사와 이치로 주미 일본대사를 불러 현재 양국 간 합의안 대로 2014년까지 이 비행장을 오키나와현 나고시에 있는 주일미군 슈와브 기지 연안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며, 이는 미국 정부가 하토야마 총리를 사실상 불신임했다는 의미라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신문은 일본대사를 급거 호출한 것은 후텐마 비행장 이전을 둘러싼 하토야마 총리의 행태에 클린턴 국무장관이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지난 주 코펜하겐에서 클린턴 국무장관과 잠시 만난 뒤 클린턴 장관의 생각과 반대로 “(클린턴 장관으로부터) 충분히 이해를 구했다”고 소개한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은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용인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21일은 폭설로 미국 정부 기관이 임시휴무 상태였음에도 클린턴 장관이 급히 주미 일본대사를 부른 것은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문) 미군 기지 이전 문제로 미-일 양국 간의 고위급 대화 채널도 상당부분 끊겼다구요?
 
답) 그렇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갑작스런 주미대사 호출은 “하토야마 총리는 이제 더 신용할 수 없다”는 바락 오바마 정권의 생각이 반영된 것인데요, 클린턴 장관은 15분 간의 회담에서 후텐마 비행장 이전은 기존 미-일 간 합의안 이외에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타진했던 오카다 가쓰야 외상의 방미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후텐마 이전과 관련해 현행 미-일 간 합의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 연락하라”고 통보했다고 이 신문은 오바마 정권에 가까운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전했습니다. 종전 후텐마 합의 이행이 전제되지 않으면 미-일 정상 간이나 각료급 회담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인 셈입니다. 이에 따라 이 문제가 진전되지 않을 경우 내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릴 주요 8개국 (G20) 정상회의 등 계기에도 양국 정상이나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기 힘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문)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강제로 끌려와 노동을 강요 당한 한국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들이 제기한 후생연금 탈퇴수당 지급 청구에 대해 청구자 1인당 99엔을 지급했다는 보도가 있던데요.
 
답) 그렇습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후생연금을 청구한 사람은 10대 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끌려와 미쓰비시중공업 등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8명의 한국인 할머니와 유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1년 전인 1998년에 후생연금 탈퇴수당 지급 청구를 했고, 주무 기관인 일본 사회보험청은 이들 가운데 7명에 대해 일정 기간 후생연금 가입이 인정된다면서 각각 99엔, 한국 돈으로 약 1천2백원을 은행 계좌로 송금했다고 합니다. 99엔은일본의 담배 한 갑 가격에도 못 미치는 것입니다. 이는 강제동원과 노동 강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화폐 가치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일본 정부의 그 같은 처사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회보험청은 한국인 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한 후생연금 지급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피하면서도, 지급 금액은 후생연금보험법에 따라서 산정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 피해 한국인 할머니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에 조롱 당한 기분”이라고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문) 아무리 오래된 과거의 일이라고 하지만, 연급지급액이 담배 한 갑 가격도 되지 않는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그 같은 일이 어떻게 발생한 건가요.
 
답) 피해자들의 지원단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8명 가운데 전쟁 중 사망해 가입 기간이 짧은 1명을 제외한 7명에 대해 지난 9월 1944년10월부터 1945년8월까지 11개월 간 연금에 가입했음을 인정했습니다. 때문에 탈퇴수당 명목으로 이번에 연금을 지급한 것인데요, 연금액 산출은 당시 피해자들의 평균 급여 등을 기준으로 계산됐는데, 그 과정에서 물가변동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 금액 산정은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이 있던 아이치현의 사회보험사무국이 담당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에서 조차 “연금탈퇴 수당은 본래 전시에 동원된 사람들이 귀국할 때 지급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지금까지 방치해 놓고 당시 금액을 그대로 지급하는 것은 수령자 입장에서 보면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며 “국가나 사회가 성의를 갖고 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