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지난달 말 화폐개혁을 단행한 데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를 방문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라선지구 방문이 국가의 경제통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지난달 말 단행된 화폐개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연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를 방문해 대외무역발전을 위한 지시를 내렸다고 북한 조선중앙 TV와 노동신문 등이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라선지구를 찾은 것은 지난 1991년 이 곳이 경제자유 무역지대로 지정된 뒤 처음입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북한 경제 전문가 루디거 프랑크 교수는 김 위원장의 라선지구 방문이 국가의 경제통제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지난달 말 단행된 화폐개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화폐개혁이 국내 시장 부문에 대한 국가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면, 김 위원장의 라선지구 방문은 국가가 통제하는 대외경제를 증진하기 위한 행보라는 겁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란드 부소장도 화폐개혁과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가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일관된 정책 방향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내부적으로 국가의 경제통제를 강화한 뒤 대외적으로는 개방을 확대하고 무역을 증진한다는 겁니다.

북한의 이 같은 경제전략에 대해 빈대학의 프랑크 교수는 과거로의 회귀라고 분석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라선지구 방문도 경제무역지대를 다원화해서 협력 대상국들끼리 서로 경쟁하도록 한다는 북한의 과거 방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돼 개성공단의 활동이 위축될 경우 나진선봉 지구와 신의주를 통해 교역과 수익 창출을 도모하겠다는 겁니다. 이처럼 북한이 과거의 경제전략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시장 기능 강화에 역점을 둔 경제개혁 실험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프랑크 교수는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이 같은 경제전략 수정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북한 채권 거래를 대행하고 있는 영국의 금융중개회사 이그조틱스 (Exotics)에 따르면 북한 채권은 화폐개혁이 단행된 뒤에도 여전히 액면가의 9~11%의 낮은 가격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그조틱스의 스튜어트 컬버하우스 경제분석가의 말입니다

단순히 화폐 가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북한의 경제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겁니다.

컬버하우스 씨는 외화 부족과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등을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오히려 경제 자유화를 강화해야 하는데 북한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컬버하우스 씨는 김정일 위원장의 라선 지구 방문도 정치적인 행보에 불과하다며,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경제가 개선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