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과 구 소련의 몰락은 북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북한경제는 이 때부터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등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는데요, 이연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듬 해부터 폴란드와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에서 차례로 공산당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는 공산권의 중심국 역할을 하던 소련마저 붕괴됐습니다.

이같은 상황은 북한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워싱턴 소재 민간 연구기관인 해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지적했습니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2년 뒤에 이뤄진 구 소련의 붕괴가 북한경제에 미친 영향이 컸다고 클링너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소련으로부터 제공되던 무상 원조나 보조금 등이 중단되면서 북한의 경제 여건이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입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 워싱턴에 있는 미국북한인권위원회의 방문연구원인 김광진 한국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소련과 동구 공산주의 경제권과의 교류가 중단된 것을 가장 중대한 영향으로 꼽았습니다.

“그런 경제시장이 붕괴됐기 때문에 바로 북한경제에, 특히 대외무역 활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그 때부터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 거죠.”

북한의 대외교역 통계는 그 때부터 북한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 북한의 대외교역 규모는 27억2천만 달러로 전년도 47억2천만 달러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그 후에도 북한의 대외교역 규모는 계속 줄어들어 1998년에는 14억4천만 달러에 불과했고, 이는 결국 외화난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소련의 해체로 원유 등 원자재를 동맹국들에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던 관행이 사라지면서 북한은 극심한 에너지난에 빠졌습니다. 에너지 공급 부족은 산업 전반에 파급되면서 전반적인 생산력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의 국내총소득은 1990년 2백32억 달러에서 1998년에는 1백26억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연 평균 마이너스 3.8% 성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기관인 우드로 윌슨 센터의 제임스 퍼슨 연구원은 1960년대와 70년대 북한의 잘못된 경제정책이 90년대 공산권의 몰락과 결합돼 북한경제가 파탄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공산권 붕괴로 경제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진 북한은 처음으로 ‘주체경제’ 또는 ‘자력갱생’을 강조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퍼슨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반면, 20년 전 베를린을 동서로 가로 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진 이후, 동유럽의 구 공산권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 들이며 국제 경제체제의 일원으로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드로 윌슨 센터의 퍼슨 연구원은 북한의 개방 거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김일성 주석의 기억과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5년 간에 걸친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기억과 만주에서 항일 투사로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는 김 주석은 국제 경제체제나 세계화를 철저히 불신했으며, 이런 인식이 아들인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 개혁과 개방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초에 북한 최초의 자유무역지대인 라진선봉 특구를 설치한 데 이어 신의주 특구와 개성공단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일종의 경제개혁인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방문연구원인 김광진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 같은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 같은 조치들은 일시적인 조치에 그쳤다고 말했습니다.

“좀 대담하게 변화를 시도해 보자 하고 도입했던 것만은 사실이구요, 그런데 그 것이 국가 전체의 전략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시험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시험이 국가 전체의 전략적인 전략이나 구체적인 실행대책들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시험이 실패하게 된 거죠.”

해리티지재단의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이 2005년 이후 개혁 조치들을 철회한 것을 예로 들면서, 북한 정권은 개혁개방 조치들을 정권에 대한 내부 압력이 쌓이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 정도로 이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북한의 개혁 개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클링너 연구원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모든 징후들을 종합해 볼 때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