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헝가리에서 철의 장막이 걷혔습니다. 헝가리 정부가 그 해 8월 19일 서부 국경을 개방하자 3개월여 전 헝가리로 넘어 온 수백 명의 동독인들이 오스트리아로 넘어갔습니다.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국민들이 총살과 국경 지역 지뢰 밭에서 목숨을 잃는데 대한 위험없이 서방세계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졸트 쳬르하미 씨는 티셔츠와 컵, 펜, 그리고 미장원 앞치마 등에 사인과 로고를 인쇄하는 회사 '팔스티프린트'를 운영하는 소규모 자영업자입니다. 그는 지금은 폐쇄된 헝가리 공산시절 대규모 산업 단지 내에 한 건물을 사서 입주해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넓은 관점에서 보면 그처럼 큰 공장 단지가 파산했다는 것은 안된 일이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가게를 좋은 가격에 사서 운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잘 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쇄 기기와 출판에 대한 개인 소유를 엄격하게 금하는 공산주의 체제였다면 이처럼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하자 헝가리에 자유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습니다. 헝가리인들은 단일 정당이 아닌 복수 정당에 투표하고, 자유롭게 해외 여행을 즐기며,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온라인 리서치 그룹이 실시한 새로운 여론 조사에서는, 헝가리인 5명 중 단 1명만이 1989년 이래 헝가리가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헝가리인 56%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전 국경 경비요원이었던 줄리아 셰매릭 씨는 헝가리가 얻은 자유를 환영하지만, 공산주의 몰락 이후 삶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득찼다고 말합니다.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삶이 더 악화됐고, 헝가리인들이 기대하던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철의 장막이 무너졌을 당시52살이었던 솔탄 레즈냑 씨는 부다페스트의 한 큰 
방직공장에서 기계 정비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골수 공산주의자인 레즈냑 씨는 
공산주의 시절의 안정이 그립다고 말합니다. 헝가리에 자유가 찾아왔지만 집없는 
사람들과 실직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하루 8시간 노동, 8시간 오락, 그리고 8시간 휴식 제도를  헝가리에서 더 찾아볼 수 없다고 레즈냑 씨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대신 12시간, 14시간 혹은 16시간 씩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헝가리의 실직자 수는 60만명에 이릅니다.

한편 이웃 폴란드에서 20년 전 공산주의가 몰락하기 이전에  10년 가까이 폴란드 자유노조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자유노조는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 내 레닌 조선소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 자유노조는 20년전 1천만명 보다 훨씬 적은 2백만명이 노조원으로 가입돼 있습니다.

많은 폴란드 사람들은 자유노조가 자체 성공의 희생자가 됐다고 말합니다.

루드윅 프라드진스키 씨는 조선소의 상황이 과거에 비해 안정적이지 않다며, 자신은  34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해직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단스크 근처의 조선소 2곳이 이미 폐쇄됐고, 그단스크 시설도 우크라이나 투자가가 소유주로 있습니다. 또 조선소의 소장은 불가리아인이며 노동자는 한국, 베트남 우크라이나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폴란드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을 부추킨다고 말합니다.

그는 육체 노동자들의 임금이 아주 낮고 공정하지 않다며,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조선소는 계속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근로 노동자들의 수가 많지 않아 더 이상 줄일 수 없기 때문에 값싼 임금 노동자들을 더 투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붕괴를 위해 투쟁했지만 그 결과 일자리를 잃게 된  폴란드의 일부 노동자들은 비통함을 표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자유노조운동에 참여해 폴란드 전체 정권을 무너뜨린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