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지난 8월 초 억류 여기자를 석방한 이후 석 달째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평화 공세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전임 부시 행정부 보다 북한에 더 강경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는데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기류를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이 석 달째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8월 초 평양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사를 밝히고 억류했던 여기자를 석방했습니다.

북한은 이어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특사를 평양으로 초청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어 10월 초에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면담한 자리에서 비록 모호하게 나마 북 핵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이어 북한은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을 미국에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평양의 거듭된 유화 제스처에 원칙적인 입장만 강조하며 다소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14일 “북한이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를 약속하지 않는 한 미-북 간 직접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사령탑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21일 “미국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지만 협상 복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대북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더글라스 팔 연구원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부시 2기 때보다 더 강경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부시 행정부 시절에는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가 이런저런 양보를 해가며 북한과의 협상을 진전시켜 왔는데 오바마 행정부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8월 초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당초 북한과의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올 4월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데 이어 5월25일 핵실험을 실시하고 6자회담을 파기했습니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가 현재 평양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비핵화 의사를 재확인 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조건부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내비쳤을 뿐, 단 한번도 분명한 어조로 비핵화 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고 대북 제재를 계속하고 있다고 스트로브 전 한국과장은 말했습니다.

스트로브 전 한국과장은 또 ‘학습 효과’를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현재 미 서부 스탠포드대학 한국학 연구소 부소장인 스토로브 전 과장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5년 간 북한과 협상하면서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제재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북한과 양자회담을 하는 것은 평양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스트로브 부소장은 말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냉담한 이유로 ‘이란 핵 문제’를 꼽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씨는 최근 미 외교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마이클 그린 씨에 따르면 현재 국제사회에는 북한 핵 문제와 이란 핵 문제가 두 가지 뜨거운 이슈입니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대북 제재를 풀 경우, 이는 이란 핵 문제 해결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최근 평양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기 위해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 외무성의 리근 미국국장이 뉴욕에 도착한 지난 23일, 미국은 북한의 ‘압록강개발은행’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습니다. 대화와 제재는 별개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또 필립 골드버그 대북 제재 이행 담당 조정관은 지난 19일 미국 정부 합동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신성호 방문 연구원은 북한이 지금이라도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6자회담에 복귀라든지 영변 핵 시설 불능화를 다시 원상복구 한다든지 이런 것을 우선 시작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또다시 북한에 보상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보다 분명한 어조로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원칙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며, 현재의 제재 국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