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탈북 난민 100명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근거해 난민 지위를 받아 제3국에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지난 9월 말 현재 93명으로 이르면 올해 안에 1백 명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탈북자 1백 명 시대를 맞아 여덟 차례에 걸쳐 특집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3부는 지난 2006년 처음으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6명 가운데 뉴욕에 살고 있는 조셉 씨와 나오미 씨의 정착생활을 소개해 드립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뉴욕 동부의 부촌으로 알려진 롱아일랜드의 한 대형 슈퍼마켓. 요즘 미국의 대형 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시 도시락 판매코너에서 탈북자 조셉 씨가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요셉 씨와 손님이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

아직 서툰 영어지만 주문을 받는 등 손님과의 간단한 대화는 문제 없다고 말하는 조셉 씨.

“눈치로 많이 하죠. 상대방이 뭐라고 하면 아, 이 사람이 뭐를 원하는 구나 하고 눈치로 하고 그 사람이 말했던 것을 다시 기억해요. 그리고 혼자서 그 말을 외워서 다시 써먹어요.”

조셉 씨는 이 슈퍼마켓에서 스시 코너를 운영하는 한인 사장에 고용돼 스시맨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스시 종류를 놓고 보면 오사카 스시가 있고 도쿄 스시가 있어요. 식초를 넣은 초밥에다가 생선을 얹어서 손님을 접대하는 직업이예요.”

일본식 스시 요리는 미국에서 요즘 건강요리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93명의 탈북 난민 가운데 예닐곱 명의 남성이 스시맨으로 일할 정도로 이 직업은 탈북자들에게 인기 업종입니다. 쉽게 배울 수 있고 수입도 다른 시간제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조셉 씨는 요즘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고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대가가 나오니까. 자유가 있으니까. 또 돈 많이 주니까 좋고. 주 당 7백 불을 받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7백 달러, 한 달에 3천 달러에 가까운 월급을 받는다는 조셉 씨는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뉴욕에서 3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동생과 미국에 정착한 후 북한의 어머니를 불러 들였고, 북한 출신 여성과 결혼해 지난 해 아기를 낳았습니다.

“돌 전까지만 해도 감정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냥 신기하죠. 허허 요새는 뛰어다니기도 하고 말 하려고 하니까 이제야 실감이 좀 나요. 정말 큰 인물로 키워야죠.”

조셉 씨는 이런 가족들을 자신의 새 자가용에 태우고 여행하며 여가시간을 보낼 때 행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와이프 하고 식구들이랑 엄마랑 같이 운전해서 바닷가도 가고 박물관도 가고 공원도 가고 쇼핑도 하고.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자가용 차를 타고 허리 쭉 펴고 놀러 다니니 기분이 참 좋아요. 북한에서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탈북자 1호 6명이 처음 정착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은 2천만 명에 가까운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미국 최대의 도시입니다. 

6명 가운데 학업을 위해 미 중북부 도시로 옮긴 한 명을 제외한 5명은 현재 북부 뉴저지와 뉴욕, 코네티컷 남부를 포함하는 이 곳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계속 살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정착생활로 이미 ‘미국의 소리’ 방송에 한 차례 소개됐던 나오미 씨. 그녀는 직종을 여러 번 옮긴 다른 탈북자들과 달리 정착 후 네일 미용사라는 한 우물을 파며 뉴욕 퀸즈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 처음에 왔을 때는 영어가 힘들고 기술이 없으니까 취직이 힘들다고 얘기했었잖아요. 근데 지금은 나름대로 적응은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어도 그렇고 어느 정도 기술이 있으니까 취직하는데 어려움은 없어요.”

탈북자 가운데 처음으로 네일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야간에 옷 수선을 하는 양재학원을 다녀 이를 부업으로 삼는 등 탈북자들에게 큰 모범이 됐던 나오미 씨. 그런 부담 때문이었는지 경제적으로 많이 안정이 됐다던 나오미 씨는 최근 한동안 외로움이란 병에 시달렸습니다.

미국에서 외롭다는 점이 제일 힘들어요. 이제는 경제적으로나 다른 것은 힘들지 않아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 보면 가정도 이루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런 힘든 점은 덜해지겠죠.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하는데 아직 제가 그게 좀 부족한가 봐요.”

나오미 씨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올 초 시간을 내 탈북자 친구들이 살고 있는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한국 방문은 최근 들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주로 한국에 정착한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고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조국에 대한 향수를 대신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것입니다. 탈북 난민들은 미국 내 한국 외교공관에서 비자를 받은 뒤 여행허가증을 통해 한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 씨는 한국에서 고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한국 가니까 탈북자들 많이 살고 힘든 점 있으면 친구들끼리 서로 오가면서 얘기 나누고 정보도 교환하고, 두리하나 교회에 가니까 다 탈북자들이고. 마음으로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고, 그분들은 진짜 욕심을 갖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분위기 자체가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정에 갈증을 느꼈던 나오미 씨. 그녀에게 고향 출신 탈북자들이 많은 한국은 잠시 오아시스 같은 푸근한 곳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도 가고 쇼핑도 하고, 같은 탈북자들과 어울려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는 모습들. 나오미 씨는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데 적지 않은 갈등을 했다고 합니다.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쥔 채 잠시 고민했다던 나오미 씨. 그러나 결국 선택은 다시 미국이었습니다.

“친구 보니까 한 달에 1백만원 조금 넘게 벌더라구요. 그러나 그 것 갖고는 생활은 되지만 저축은 잘 못하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제가 한 달에 부지런히 일하면 3천불 정도는 벌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의 욕심이 (웃음) 외롭다가도 돈을 보면 마음이 좀 더 그래지는 거예요. 나름대로 여기서 이제 살만도 하구요.”

조셉 씨의 노래 –김난영의 이름없는 새/ 나오미 씨의 노래- 심장 속에 남는 사람

한 달에 3천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유지하며 이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조셉과 나오미 씨. 이따금 찾아오는 외로움과 북녘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이렇게 노래로 풀곤 합니다.

만만치 않은 미국 생활. 조셉 씨와 나오미 씨는 선배 탈북자로서 미국에 정착하는 후배 탈북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조셉: “북한에서 중국에서 살던 습성이 있어서 조금만 불만이 있으면 신경질을 내고 눈을 막 부라리고 사람들한테 그랬었거든요. 근데 그렇게 살면 자기만 피곤하고 힘들어져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웬만하면 웃어넘겨라. “

나오미: “돈도 돈이지만 마음가짐을 바로 가지면 직장에서 잘 자리잡고 또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어요. 의존적인 마음을 버리고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3년 반 전 다소 긴장된 얼굴로 미국생활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나타냈던 미국 내 1호 탈북 난민 데보라 씨와 조셉, 나오미 씨. 직업과 처한 상황은 각각 달랐지만 모두 자신감을 보인 채 외로움을 달래며 꿈을 일궈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