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탈북자는 지난 8월 말 현재 92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부부와 자녀 등 일가족 4명이 동시에 모두 들어온 가정은 미국 북부 지역에 사는 서모 씨 가족이 유일합니다. 지난 6월 동남아시아를 통해 입국한 서 씨 가족은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북한에서 배운 진정한 ‘자력갱생’의 정신만 가지면 미국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두 차례로 나눠 전해드리는 인터뷰 내용, 오늘은 29일에 서 씨 부부와 20대 초반의 두 아들과 가진 인터뷰 나머지 부분을 보내드립니다. 김영권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문) 미국 거주기간이 6월 3일에 오셨으니까, 한 석 달 조금 넘었는데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고, 그리고 석 달 지난 다음에 미국에 대한 느낌이 조금은 다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큰아들: 제 생각엔… 계속 이렇게 그리던 땅에 왔으니깐 마음에 좀 약간… 편안해지고 그리고 이제 잡힐 걱정이 없어졌으니깐 그게 제일 좋았습니다.

문) 미국에 대한 인상이 있을 것 아니에요? 뭐 땅이 넓다던가?

큰 아들: 비행기에서 내리다 보니깐 이게 환경이 좋은 것 같습니다.나무가 많고 집도 있고 북한말로는 아름다운 꽃동산 그런 것 같았습니다.

문) 양강도에도 산이 많지 않습니까?

서씨: 나무도 다 찍어서 숲이라는 건 뭐… 다 찍어서 중국에 쌀하고 바꿔 먹었기 때문에 그거 산림자원이라는 거 정말 별 거 없어요.

문) 민둥산이 많고, 그죠?

서씨: 네네. 큰물이 나게 되면 다 산사태가 날 형편이에요.

작은 아들: 비행기에서 내려다 봤을 때는 아 환경이 좋구나 그랬는데 저는 중국에서?? 시에 있었으니깐요, 그게 어지럽고 복잡한 데니깐요, 여기도 좀 아마 그런 도시겠구나 했는데 생각과 달리 좀 농촌 감이 들더라고요. 

문) 김 선생님께서는 어떠셨어요?

부인) 북한에서 중국에 넘어오니깐 중국과는 별세상에 왔구나 하고 중국 같은 세상이 또 있겠는가 하고 그렇게 생각했더니 여기 와보니깐 또 더 거기보다 다르게 환경이 좋고 무슨 동물들 이렇게 산짐승 같은 것도 그렇게 뛰어 다녀도 와서 잡는 사람도 없고 산새들도 다니고, 집 앞에서 웃고 또 지저귀니까 사람들 지나가도 날지도 않고 그래도 누구 다치는 사람도 없고 다 보호해주고 하니깐 그렇게 자유로운 세상이구나 하고 환경도 좋고요.

문) 서 선생님 이렇게 석 달을 살아보시니까 어떠세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뭐 꼭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닐 거 같고요? 장단점이 있을 거 같은데요

서씨: 물론 그건 그렇죠,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고. 근데 내가 원래 미국 올 때, 어떻게 생각을 했냐 하면 ‘이젠 성공이다.’ 하고 들어왔지요, 그런데 분명 성공한 건데, 여기 와서 보니깐, 나 일할 거 무서워하지 않아요. 일할 거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중국하고 다른 것이 미국에는 내가 딱 자동차가 있어야지 내가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이런 면에서 다른데 이거 넘기 힘든 과제인데 이거 해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문) 그러니깐 운전하고 이동하는 데 힘든 점이 있고 또 다른 힘든 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석 달 동안 살아보니까

큰 아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깐 그것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문) 오시자마자 난민단체에서 제공한 ESL,영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계시죠?

답: 네

문) 하루에 몇 시간씩 들으십니까?

부인: 네 시간

문) 매일 가십니까?

부인: 매일 갑니다.

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요?

문) 어떤 탈북자 분들은 ABC도 잘 모르는 데 너무 수준이 높은 것 같다 이런 말씀도 하시던데 어떠십니까?

부인: 아니, 여기 와보니까 말이 통하지 않아서 영어 배우는 데도 지장이 많이 생길 것이다 하고 우리가 의문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과 다르게 그림을 넣고 한번씩 배우고 배운 것을 이튿날에 먼저 배운 것을 숙제 삼아 다시 또 복습하고 이렇게 하니까 생각과 다르게 잘 들어옵니다.

문) 기초부터 차근차근 그렇게 잘 가르쳐 준다는 것이군요?

부인: 네, 재미있습니다.

처음과 다르게 조금씩 언어가 들어오는 게 있고 사람들한테 서로 말할 기회도 조성되고 하니깐 선생들도 참 역시 좋습니다. 대화수준 능력이.

문)자신감이 조금씩 붙고 계시네요.

문)지금 직업은 어떻게 일은 하고 계십니까?

부인: 남자들 세 명은 토요일 그것만 합니다, job 하고, 토요일만 하고 그리고 우리 큰 아들은 일주일에 삼일, 나흘 일합니다.

문)어떤 일을 하시죠?

아들: 생선 파는 가게 그런 데서 일합니다. 지느러미를 벗기고 그 다음에 배도 따주고 목도 잘라주고 그런 거 하고 또 손님이 오면 팔아도 주고요, 그런 거 합니다.

문)북한에서도 그런 일 해보셨어요?

아들: 저는 바닷고기 이름도 잘 몰랐습니다.

문)그쪽은 바닷가가 없으니까, 그죠?

서씨: 지금 이동하는 거 어렵다고 했는데, 우리 지금 네 사람당 남자한테 자전거 한대씩 있는데 이거 가지고 멀지만 상점에 가서 적당히 사 올 수 있어요. 기본적인 거 살려면 자동차 가진 분들이 와서 도와주곤 하는데 이것도 앞으로 전망적으로는 내 절로 자전거로 다 해결할 생각이에요.

문)그럼 어려운 점을 말씀하셨는데, 반대로 기분 좋은 기억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부인: 우리 북한생활에서는 나라 정치가들만 누릴 수 있는 생활을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와서 현실로 느껴보니까 우리가 북한에 있는 정치가들보다 더 높구나, 이제는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뒷발 차기 당하겠구나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북한사람들은 아직도 방송도 못 듣는 사람들 많으니까 이 방송을 많이 들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자유세상을 알고 인생을 바꾸려면 이 방송을 들어야만이 인정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아들: 제가 한번 저희 집 앞 마켓에 상점이라고 말하죠 북한말로, 상점에 나갔는데요. 제가 껌을 살려고 그랬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요. 제가 푸드 스탬프 , 북한말로 음식 사는 카드 그거 가지고도 되냐고 그러니까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안되겠구나 ‘미안합니다 ‘하고 나오는데 미국 분이 알지도 못하는 분이 돈 2불 내면서 달라고 그러더라고요.

문)그 분이 대신 사주셨어요?

아들: 네, 나오는데 소리치더라고요 잠깐만 서라고요, 딱 서는데 이거 주더라고요 저는 놀랐죠. 이게 뭐 알지도 못하는 데 갑자기 주나, 그분이 말하더라고요, 분명히 이민 온 사람 같은데 내가 대신 낸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감정이 완전히… 대단히..

문)그런 경험은 북한에서도 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들: 한번도 없습니다. 중국에도 없습니다.

문)사실 예전에 한 70년대 전만 하더라도 북한에서도 어려운 것 있으면 나눠 가지시고 이런 좋은 풍습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다 사라졌다 이런 말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서씨: 이제 선생님이 말한 거 사실이에요. 옛날엔 좀 서로도 없고 그런 게 있었는데 다 승냥이가 되고 여우가 되어버렸어요 사람들이. 우리 사람들이 말하는 게 자체가 고난의 행군시기에 살아남는 건 모조리 다 승냥이고 여우들뿐이다. 여우나 승냥이가 아닌 사람은 다 죽어버리고 없다. 이렇게 말 할 정도입니다.

문)고난의 행군 때 죽은 사람들은 고지식한 사람들만 죽었다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하곤 하던데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만 육천 명의 탈북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많은 분들이 한국으로 가는데 왜 미국을 선택하셨습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큰 아들: 한국에는 북한에서 우리를 착취하고 정말 못되게 놀았죠, 그분들이 한국에 가면 순간에 쭉 올라가는 겁니다. 그런 분들은 간부 했으니깐 정보도 많고 한국정부에서는 그 정보가 필요하고 하니깐 그 사람들을 써주죠, 그 사람들은 또 올라가면 우리가 가면 또 그 사람들 밑에서 또 천대받고 이렇게 해야 되니깐 이제 그런 거 싫었습니다. 근데 미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안받아준다고 그러니깐 한국 생각 조금 했다가도 그런 데서 많이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문)서 선생님께서는 미국을 선택하시는 데 방송의 영향이 컸다고요?

서씨: 네, 미국의 소리 방송 아니면 내가 아마…내 자체로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자체가 있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정치적인 세계관, 미국을 선택한 문제, 이거 다 방송의 영향이라고 봅니다. 우선 내가 지금 와서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 북한에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될 수 있으면 꼭 이 미국의 소리 방송 들을 수 있게 그리고 본인들도 한번씩 들어보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내 사는 나라 정치가들이 어떤 사람인가 좀 알게 될 것 같은데… 그 사람들 못 듣게 하고, 모르고, 세상을 모르는데 그 사람들이 좀 들었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좀 이렇게.

문)새로운 세상에 오면 새로운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느끼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대인 관계라고 그러죠, 미국사람들이라던가 여기 사는 한인들, 어떠십니까?

부인: 우리 북한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말이 없이 그냥 들어가는데 미국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아침에 만나면 ‘안녕하세요’ 그러고 우리 자체가 다 감동됩니다. 그래서 그걸 볼 때 우리도 같이 뭐든지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이거 먼저 배워야겠구나 여기 와서 많이 느꼈습니다.

문)Hello라든가 thank you를 일상에서 많이 쓴다는 말이죠?
 
서씨: 네, 미국사람들이 하루 중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인 거 같아요.

문)북한에서는 어떻습니까?

서씨: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상상도 못하죠. 내가 저 사람을 도둑질하거나 빼앗아야만 내가 죽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데 그거 상상도 못합니다.

문)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먹고 살기 힘들고 바빠지다 보니깐 점점 인심도 변화하고 있다는 거죠?

서씨: 네.

문)미국에서의 포부, 꿈이 있을 것 같아요? 작은 아드님은 어떻습니까?

아들: 저는 미군 군사복무 하려고요, 그리고 경제 공부하고 졸업하는 게 제 목적입니다.

문)북한에 있을 때는 미국 하면 반제국주의자들이고  학교 산수시간에는 셈을 배울 때 미군을 몇 명 쏴 죽여야 몇 명이다 그런 기억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하다가 미군에 지원할 마음이 들었습니까? 미군은 북한처럼 의무는 아니고 자원해서 선택할 수 있는 모병제라서 안가도 그만 인데요

아들: 중국에서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미국도 배우고 월급도 넉넉히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문)북한의 인민군대 같지 않아서 월급도 일반 직장처럼 주고 환경도 좋으니까 또 시민권도 빨리 받는 등 여러 가지 혜택들이 있으니까 그런 선택을 하신 것 같은데 우리 큰 아드님은 어떻습니까? 어떤 꿈을 갖고 있습니까? 

아들: 처음에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다 하고 싶었어요. 근데 이거 하든 저거 하든 어쨌든 제일 마지막에 돌아가보면 돈 많이 버는 거니까

문)그럼 사업을 하고 싶습니까?

아들: 예,

문)어떠십니까 우리부모님들, 서선생님과 김선생님은?

서씨: 첫 번째로 사회제도가 대단히 마음에 들어 일한 거 만큼 잘해지고 북한에서는 일하면 김정일이 다 빼앗아 가고 우리에게 잘 되는 거 손톱만큼도 없는데 여기서는 노력한 만큼 잘되는 데 나는 크게 환상을 가지고 큰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지금 나라에서 주는 혜택이 있잖아요, 푸드 스탬프와 의료 혜택 주는 거, 이거 내가 돈 계속 직장에 다녀서 내 돈 벌어서 내 돈으로 먹고 내 돈으로 집을 하나사고 차를 사고 적당히 살아가는 것. 희망하고 앞으로 실현할 겁니다.

문)미국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자녀들의 교육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부인: 앞으로 자식들을 위해서 사업을 해서 장사 운영을 해서 그래서 자식들을 위해 바치겠다는 거 그 것입니다.

문)북한에 있는 친구들 또 이웃들에게 내지는 중국이나 제 3국에서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분 들이 계시잖아요? 그 분들에게   권고 하고자 하는 말씀?

부인: 북한에서는 우리 형제들 동포들 주위 사람들 정세를 모르니까 정치가 좋은 줄 알고 그러는 데 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 혼자만 듣지 말고 주위사람들께 몰래 알려줘서 같이 들으면서 사회세계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옛날과 달리 그저 요즘은 나서부터 고난의 행군이라고 죽을 때까지 그 생활이 지속되고 있는데 그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든 듣고 보고 해서 많이 다녀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작은 아들: 첫 번째 마음준비 해 야할 것이 미국에 오면 30만 달러 준다, 10만 달러 준다 그런 생각 절대 하지 말고요, 중국이나 태국에 있으면서 정부에 대한 불평불만을 하면 안 되요. 자기에 대한 불평불만이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곳이 학습반의 시험장이라고 생각하고 참아내면 미국에서도 참아낼 수 있고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거죠?

서씨: 우리 옛날에 김정일이 김일성이한테 교육받은 것이 자력갱생 정신이 미국 와서 발휘해야 됩니다. 내 생각이 그건 데 공짜 바라는 사람 오면 안 되요. 여기 공짜가 없어요. 내가 벌어서 내가 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짜가 없고 한국에선 정착 비를 주지만 미국은 정착비가 단 한 푼도 없으니까 공짜 바라는 사람은 여기 오지 말고 한국가세요. 그리고 옛날에 배운 자력갱생 혁명정신 발휘 할 수 있는 사람은 미국에 오면 성공합니다.

문)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잘사는 게 자력갱생이죠?

부인: 우리도 와서 생활하면서 보니깐 능히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자기자신만 정신적 각오를 가지고 달라 붙으면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거. 그렇기 때문에 순간에 주는 돈이 그건 몇 푼 안되지만 그 효과보다 자기정신상태가 중요해서 들러붙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도착해서 살아보니까 무엇이나 만족하고 우리 생활엔 다 풍족하고 좋습니다. 그러니까 돈에만 치우치지 말고 생활할 것을 각오하면 성과를 거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