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소식과 화제를 전해드리는 미국은 지금 시간입니다. 오늘은 김정우 기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문) 2009년 한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두 분이나 서거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지난 주에 한 거물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죠?

(답) 그렇습니다. 메사추세츠 주 출신,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연방 상원 의원이 지난 25일 저녁 뇌종양으로 사망했습니다. 향년 77세입니다.

(문)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명문 집안인 케네디 가문의 일원이었죠?

(답) 네, 케네디 상원 의원은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친동생입니다. 미국에는 이 케네디 집안 말고도, 미국 정치계에서 이름을 날린 집안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케네디 가문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집안도 드물죠.

(문) 케네디 가문이 미국 정치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계기는 바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때문이었죠?
(답)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케네디 가문이 정치적 명문가로 성장하게 된 것은 사망한 에드워드 케네디의 아버지인 조셉 케네디 때부터 입니다. 조셉 케네디는 금융업에서 많은 돈을 벌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정계에도 진출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에는 영국 주재 미국 대사직을 맡기도 했지요.

(문) 이 조셉 케네디는 모두 9명의 자녀를 뒀는데, 이중에서 아들 세 명이 정치인으로 성공하게 되죠?

(답) 그렇습니다. 조셉 케네디의 4남 5녀 중에 큰 아들은 2차대전 중에 사망했고요, 둘째 아들인 존이 나중에 대통령이 됐고, 셋째인 로버트는 형 존 밑에서 법무장관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넷째 아들이자, 9남매 중 막내가 바로 이번에 사망한 에드워드 케네디입니다.

(문) 에드워드 케니디 의원은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둘째 형,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형을 대신해 연방 상원에 진출했죠?

(답) 네, 사실은 1961년, 대통령에 당선된 형을 대신해 연방 상원의원에 지목됐을 때는, 나이가 만 서른 살이 되지 않아서 상원의원이 되지는 못했고요, 이듬 해 열린 보궐선거에 당선돼, 그때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연방 상원에 입성하게 됩니다.

(문)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연방 상원의원이 된 후에, 둘째 형,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되고, 셋째 형 로버트 케네디도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지만, 전당대회장에서 암살당하게 됩니다. 참 비극적인 가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형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난 후부터, 케네디 가문의 구심점이 됐는데, 그의 정치 인생이 처음에는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죠?

(답) 그렇습니다. 케네디 의원은 신참 상원의원 시절엔 미숙하고 자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두 형이 추진했던 사회복지정책과 인권정책을 계승해서, 이런 정책들이 실현되는데, 크게 기여를 하면서부터, 미국 진보 정치세력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그 결과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도 맡고, 대통령 선거에 나갈 차세대 주자로 꼽히기도 했는데, 1969년에 첫번째 시련이 찾아오게 되죠.

(문) 얼마 전에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떠난 마서스 비니어드 섬 인근 채퍼퀴딕 섬에서 발생한 사고라 해서 이른바  채퍼퀴딕 스캔들로 불려지던 사건이었죠?

(답) 네, 당시 케네디 의원이 여비서인 메리 조 코패크니와 차를 타고 가다, 채퍼퀴딕 섬 다리에서 자동차가 추락해 코패크니만 숨졌던 사건입니다.

(문) 당시 케네디 의원은 이 여비서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답) 그렇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불륜관계가 아니었고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차가 강에 빠지자, 케네디 의원은 혼자 차를 빠져 나왔는데, 조수석에 타고 있는 이 여성은 익사했죠? 그런데 케네디 의원, 사고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날이 돼서야 사고를 신고합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불륜관계를 숨기기 위해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여성이 죽도록 방치했다며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생활 문제 때문에 잘 나가던 정치인의 정치생명이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 이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상원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죠?

(답) 그렇습니다. 당시 케네디 의원은 대통령 도전은 고사하고 의원직도 위험한 상황이었는데요, 이런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 승부수를 던집니다. 바로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상원의원직을 유지해도 괜찮은 지를 물어본 것이죠.

(문) 케네디 의원은 이때 유권자들로부터 의원직을 내던지지 말라는 수천통의 전보를 받고, 정치생명을 유지하게 됐구요.

(답) 그렇습니다. 케네디 의원, 이렇게 유권자들의 지원으로 겨우 기사회생했지만, 이 사건이 평생 족쇄가 돼서, 끝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는 못하게 됩니다.

(문) 이런 염문과 음주 벽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재직 기간 중에 진보진영의 기수로 인정받게 되는데요.

(답) 그렇습니다. 케네디 의원은 거의 50여년을 상원의원직을 수행하면서 모두 1만 5천 여건의 법안 표결에 참여해 투표권을 행사하고 2천 500개 이상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케네디 의원은 이를 통해서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정책들이 만들어지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케네디 의원은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톨릭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지지했고요,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 몇 안되는 상원의원 중에 하나입니다. 케네디 의원은 이밖에도 미국에 사는 불법 이민자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이민법 개혁의 강력한 지지자였고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보험개혁의 강력한 후원자이기도 하죠.

(문) 케네디 의원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도 반대했죠?

(답) 그렇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표를 던진 케네디 의원,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네요? 연방 상원에서 수많은 투표를 했지만,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측에 표를 던진 것이 그동안 자신이 한 투표 중에서 제일 잘한 투표라는 말을 했습니다. 1960년대 미국 내 소수민족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민권법 수립에 기여하면서부터, 낙태허용, 이라크 전쟁 반대 그리고 최근의 의료보험개혁 지지까지, 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정말 자유주의의 사자란 별명에 걸맞는 활동을 하다 눈을 감았습니다.

이제 에드워드 케네디의 죽음으로 미국 정치사에 짙게 드리운 케네디 가문의 신화가 빛 바랜 역사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빛이 바랜 역사라도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있겠죠? 케네디가의 역사가 과연 미국인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겨 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김정우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