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단장으로 한 북한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이 21일 서울을 찾아 1박 2일의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북한 고위 당국자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인데요, 김 비서는 "만날 사람을 다 만나겠다"고 말해 남북 고위 당국자간 회동 가능성이 매우 커 보입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6명의 북한 조문사절단은 21일 오후 2시 고려항공 특별기편으로 평양을 출발해 서해 직항로를 통해 오후 3시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조문단은 김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 맹경일 아태위 참사, 리현 아태위 참사,김은주 북한 국방위 기술일꾼 등입니다.

북한 당국자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2월말 이명박 정부 출범한 이후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문단 일행은 공항에서 홍양호 통일부 차관과 정세현 김대중 평화센터 부이사장 등의 영접을 받은 뒤 오후 3시35분쯤 이들과 함께 준비된 차량을 타고 국회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빈소로 이동했습니다.

북측 조문단은 오후 3시53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해 평양에서 가져 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화를 김 전 대통령의 영전에 헌화하고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조화는 크고 긴 꽃봉오리를 가진 흰색 꽃을 배경으로 별 모양의 중앙부분의 위쪽은 진분홍색 김일성화가, 아래쪽은 붉은 색의 김정일화가 박힌 형태로 꾸며졌습니다.

이어 추모 묵념을 한 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등 유가족들과 악수를 나누며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조문단의 단장을 맡은 김기남 비서는 조문단을 대표해 조문록에 '정의와 양심을 지켜 민족 앞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라고 적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빈소가 있는 국회의사당은 물론 북한 조문단이 도착한 김포공항과 숙소인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 그리고 이동 경로 등에 경찰 인력을 배치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전을 기했습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조문단 신변안전 등을 고려해 빈소 일정 이외의 다른 일정은 일절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정부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 조문단의 신변 안전 등을 감안해서 조문단의빈소 방문 일정만 외부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북한 조문단의 조문이 이뤄지도록 취재와 관련해서 인터뷰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장의위원회에서 요청해왔다는 점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북측 조문단에 관심이 모아지는 주된 이유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릴 조짐이 보이면서 조문단이 서울 체류 중에 한국측 정부 당국자와 모종의 접촉을 가질 가능성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는 일정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남북 고위당국자간 접촉 가능성을 시사하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기남 비서는 빈소 조문 뒤 서울 동교동의 '김대중 평화센터'에서 김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희호 여사를 따로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측 당국자와의 접촉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 비서가 만날 사람을 다 만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박 의원은 김 비서가 이 같은 뜻을 김포공항에 마중 나왔던 홍양호 통일부 차관에게도 밝혔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비서는 또 "여러 사람이 만나자고 남측에서 요청을 하고 있고 우리도 그럴 준비를 하고 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비서는 이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도의 뜻도 전했습니다. 김 비서는 "김 위원장이 여러 나라에서 조문단이 오겠지만 남보다 먼저 가서 직접 애도의 뜻을 표해야 한다고 했다"며 "사절단의 급도 높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친필 서명한 조의문을 낭독하고 이 여사에게 전달했습니다.

또 조문단 일행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 김대중 평화센터 관계자들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만찬에는 정부 관계자로는 김남식 통일부 남북교류협력국장만 참여했습니다.

이에 앞서 김 비서는 한국의 김형오 국회의장과 예정에 없는 만남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직후 국회의장실에서였습니다. 조문 직후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김 비서에게 다가 가 "김형오 국회의장이 차 한잔 하자고 한다"고 말하자 흔쾌히 "그러자"고 답하면서 당초 일정에 없는 만남이 이뤄진 것입니다.

김 비서는 김 의장과의 대화 중에도 한국 정부와의 대화의지를 거듭 피력했습니다.

"앞으로 내일까지 있게 되는데, 서로 만나서 얘기도 하고 하면 좋겠습니다"

김 비서는 또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고인의 북남화합과 북남관계 개선의 뜻을 받들어 할 일이 많다"며 "우리도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경색된 남북관계를 의식한 듯 "다 먼길이라 하는데 먼길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 의장도 "이번 기회가 남북관계 돌파구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계시는 동안 만나 뵐 사람 만나고 편하게 보내시라"고 화답했습니다.

고위급의 남북 당국간 접촉 가능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현재까지 예정된 접촉 일정은 없다면서도 상황에 따라 대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대부분 김 비서의 대화의지가 분명하고 한국 정부도 조건없는 대화를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고위급 당국자간 접촉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청와대 예방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습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숩니다.

"이들의 면면이 일단 무게감이 있고 현 회장과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흐름 속에서 뭔가 남북이 직접적으로 나서긴 어려운 상황에서 DJ의 서거가 사실상 가려운 등을 서로 긁어주는 이번 측면에서 볼 수 있겠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북측 사절단이 서울에서 우리 당국자 또는 최고 당국자까지 만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북측 조문단을 접견할 가능성에 대해 "북측 조문단의 요청이 없고 현재로선 만날 계획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혹시 만나게 되면 투명하고 당당하게 만나지 뒤로 비밀회동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만약 현재의 조건에서 한국 정부가 북측 조문단의 요청을 받아 접촉한다면 청와대가 아닌 통일부 차원의 접촉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북측 조문단은 22일 오후 2시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