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이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과 대규모 식량난 때와 비슷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불확실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취약한 후계 구도, 유엔의 제재로 극도로 제약된 대외관계, 갈수록 통제가 어려운 주민들, 계속되는 경제난 식량난 등 북한 정권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점검하는 특집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이연철 기자가 북한의 경제.식량난에 대해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북한영화 ‘자강도 사람들’ 중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던 90년대 중반, 이 땅에는 준엄한 시련의 날과 날들이 끝없이 흘러갔다.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준엄한 대결장에서…… ”

북한 영화 ‘자강도 사람들’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영화는 체제 선전을 위해 제작됐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의 끔찍했던 북한 식량난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북한 전역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특히, 자강도는 식량난이 매우 심했고, 배급이 가장 먼저 끊긴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북한영화 ‘자강도 사람들’ 중에서]
“우리는 방금 희생된 동지의 시신을 언 땅에 묻었습니다. 피눈물을 뿌리며 시작한 이 고난한 행군이 이처럼 가슴 아픈 희생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해 본 사람도 없었고……”

영화 주인공은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얼어 죽은 사람을 추모하면서, 내일은 또 누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영화가 나온 지 8년이 지난 지금, 당시와 같은 상황이 다시 닥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합니다.

한국 정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재 북한은 핵 위기와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겹친 1994년 당시에 필적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분석하면서, 올 하반기에는 경제 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보고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이에 따른 권력승계 문제, 2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북관계 경색 등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대내외적 요인들이 맞물렸을 때 그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주민들에게 이전될 것으로 지적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절과 같은 극심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직접적인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세계식량계획 WFP 평양사무소의 토빈 듀 소장은 지난 1일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WFP가 북한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처럼 식량을 지원 받는 주민들이 적었던 것은 처음이라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북한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넘는 8백70만 명이 식량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지만 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난 3월, 아무 이유 없이 미국의 식량 지원을 거부한 데 이어 북한에서 식량 분배를 담당하던 5개 비정부기구 관계자들을 추방했습니다.

북한경제 다른 부문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주민들에게 기본생필품 마저 제공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가 피폐한 상황입니다. 특히,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과 외화 부족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중국 상하이 다큐멘터리 채널 북한 취재 방송)
 
중국의 상하이 TV가 최근 북한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현장목격 북한’은 북한의 낙후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북한 최고의 병원 마저 툭하면 전기가 끊긴다고 전했습니다. 북한 의료진이 병원에는 산모와 갓난아이가 전염되지 않도록 가족과 화면으로 면회하는 첨단장비가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순간 정전으로 병원이 깜깜해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북한경제가 3년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는 한국은행 발표가 최근 나오기도 했지만, 수치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 미국 평화연구소의 존 박 연구원은 지적합니다.

북한의 경제체제는 아직도 1990년대 중반 이후 기아와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한 막대한 피해로부터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도 지난 해 북한경제의 플러스 성장은 양호한 기상 여건과 이에 따른 식량 생산 증가, 그리고 외부의 지원 증가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부족한 자원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거 투입됐기 때문에 경제가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경제가 만성적인 경제난과 식량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주민들 보다 정권의 안보를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워싱턴 소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란드 연구원은 특히 북한의 최근 경제정책이 후계 구도와 연계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놀란드 연구원은 북한이 최근 취한 가장 큰 경제적 조치는 1950년대의 천리마 운동을 부활한 것이라며, 이같은 움직임은  김정일 위원장의 불안한 건강 문제와 이에 따른 후계 문제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의 경제정책이 개혁개방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회귀적이고 강압적인 경제정책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20일 시작된 ‘1백 50일 전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선중앙TV 보도]
(아나운서)“모두가 1백50일 전투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
(북한 노동자)“이 장엄한 투쟁에서 영웅적 위훈을 창조하겠다며 낮 밤이 따로 없이 힘찬 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주민들은 대대적인 노력 동원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가정주부들까지도 1백50일 전투에 동원된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1백50일 전투가 1백일 째를 맞은 지난 29일,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초소들에서 지난 1백일 동안에 이룩한 승리와 성과, 기적과 위훈은 실로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중 노력 동원 방식의 경제운용은 1970년대 초까지 북한경제의 외연적 성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경제를 왜곡시켜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합니다. 탈북자 출신으로 현재 워싱턴에 있는 미국북한인권위원회에 방문연구원으로 나와 있는 김광진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의 말입니다.

[김광진] “ 어떻게 비유할 수 있냐 하면은 선수들이 경기에서 속도를 내려고 약물을 투여하는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그 것하고 좀 비유가 될까요?”

북한은 150일 전투와 함께 사설 시장에서 매매되는 물품 종류와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일부 시장을 폐쇄함으로써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영화 ‘자강도 사람들’은 주인공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자력갱생으로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고 마침내 발전소 건설 목표를 달성하는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납니다.

[영화 ‘자강도 사람들’ 중에서] “(내레이션) 장군님께서는 이런 혁명동지들과 함께라면 고난의 행군을 열 백 번 다시 한대도 무서울 것이 없으시다면서, 이들의 투쟁정신을 강계정신으로 이름 짓자고 뜨거운 믿음을 안겨주셨다.”

하지만, 지금 북한이 당면한 현실은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김광진] “ 지금 혼자서 자립갱생을 자꾸 떠들고 있지만, (북한경제는) 혼자서 회생하기 어려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김광진 연구원은 북한경제가 회생하고 주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체적인 개혁개방 노력과 외부의 지원, 자본의 유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 정권의 움직임을 감안할 때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난과 식량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