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어제 (23일) 끝난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기간 중 클린턴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입장을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밝혔습니다. 미국은 특히 북한의 핵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괄타결식 해결 방안도 거듭 확인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자세한 내용 전해드립니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분명히 밝힌 주요 입장 가운데 하나는, 핵을 포기하면 북한에 새롭고 종합적인 보상책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22일 태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 동의한다면 미국은 관계정상화를 비롯한 보상책을 제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클린턴 장관은 이와 함께 북한이 단순히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거나 이미 약속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북한에 선물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클린턴 장관이 이번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 평양에 보낸 것은 '양자택일' 메시지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계속 당할 것인지, 아니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해 미국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클린턴 장관의 발언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새로운 대북 종합보상책'입니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북 관계정상화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그리고 대북 경제 지원 외에도 새로운 보상책이 준비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민간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의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이 한국, 일본, 중국과 상의해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북한 핵 문제 해결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공산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클린턴 장관이 밝힌 핵 문제 해결 방안이 과거 부시 행정부의 해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클린턴 장관이 언급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 검증가능한 핵 폐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주고받기식 해결 방안도 과거 부시 행정부가 시도했던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이에 대해 클링너 연구원은 주고받기식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은 같지만 거래를 하는 방식과 선물 보따리의 크기는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과거 부시 행정부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이 영변의 핵 시설을 동결하면 중유를 제공하고, 또 핵 신고를 하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식의 '점진적이고 단계적' 방식을 취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그보다는 좀더 포괄적인 일괄타결 방식의 협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재단의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은 핵 문제와 미-북 국교 수립, 경제 지원 등 미-북 간 모든 요구와 보상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카드를 맞바꾸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핵 폐기와 대북 보상책을 맞바꾸자는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번 아세안 지역 안보포럼에 참석한 북한 외무성의 이흥식 군축과장은 23일 태국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평양의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안전과 자주권, 말하자면 우리의 생명을 몇 푼의 돈과 바꿀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흥식 군축과장은 이어 미국이 제시한 포괄적 보상책은 부시 행정부 정책을 이어받은 것이라며, '북한의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상책을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자의 이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필요는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모든 문제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것은 북한 당국이 오랫동안 반복해 온 주장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민간 연구소인 아시아재단의 스콧 스나이더 미-한 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스나이더 소장은 북한이 기존의 방어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공을 미국 쪽에 넘기려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북 관계는 당분간 대북 제재 국면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  '제재와 대화'라는 두 가지 선택안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아직 대화의 테이블로 나올 조짐이 없어 앞으로 몇 달 간은 현재의 긴장 국면이 이어질 것이란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