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에서는 회교도 수만명이 11일 스레브레니차 마을에 모여14년 전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지난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2차 세계대전 후 최대 규모의 학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추모객들은 또 공동묘지에서 발굴한 희생자들의 유해 수백구도 이장했습니다. 이 추모식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민족 간 갈등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치러졌습니다. 자세한 소식입니다.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해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는데만 14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지난 11일 열린 추모식에서 희생자들의 가족은 마침내, 스레브레니차-포토카리 추모관의 공동묘지에 매장된 3천 300명의 유해 곁에 새로 534명의 희생자들의 유해를 안장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44명이 포함된 이들 534명의 희생자들은 지난 1995년 7월,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 마을을 점령했을 때 학살한 회교도 남자 8천명 중에 일부입니다.  

당시 보스니아 내 회교도들은 유엔이 스레브레니차 지역을 안전 장소로 지정한 후 내전을 피해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수에서 밀린 유엔 평화유지군은 세르비아 민병대가 스레브레니차 마을을 점령할 때 이들을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유엔 평화유지군은 세르비아 민병대가 마을을 둘러싸고 처형할 남자들을 가려내고 있을 때 이런 상황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한 할머니는 살아남지 못한 희생자들이 오늘을 보지 못하고 희생됐다고 생각하니 슬프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또 한 중년 여성은 회교 사원에서 기도할 때 그 당시 죽은 어린 아들을 봤다고 한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성의 친척들은 그녀가 지난 14년 동안 환상을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1일 학살 희생자를 위한 추모식이 열렸지만 역사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보스니아 의회 내 세르비아계 대표들은 7월 11일을 스레브레니차 학살 추모일로 삼자는 결의안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유럽 의회는 7월 11일을 스레브레니차 학살 추모일로 제정했습니다. 보스니아 종족 분쟁은 수천명의 희생자와 보스니아를 자치권을 가진 회교도-크로아티아 연맹과 세르비아계 스르프스카 공화국 지역으로 나누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편 페터 암몬 독일 외무 장관을 비롯한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보스니아에서 보이는 이런 분리 현상이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에 가입하길 원하는 보스니아의 염원이 실현되는 것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암몬 장관은 보스니아와 이웃한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이 지역에 필요한 개혁이 정체되어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암몬 장관은 또 보스니아가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이 지역 안정을 확보하는데 큰 전기를 마련할 수 있지만, 분열된 상태가 아닌 통일된 보스니아만이 유럽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미국 의회 대표단도 11일 열린 추모식에 참석해 추모의 돌로 알려진 곳에 꽃을 바쳤습니다. 또 챨스 잉글리시 보스니아 주재 미국 대사는 성명을 발표해,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은 인류의 양심에 남겨진 오점이라고 지적하면서 전세계는 이런 학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스스로 반문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