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확대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장관이   타계했습니다.  맥나마라전 장관은 93세를 일기로 이곳 워싱턴 디씨 자택에서 6일 숨을 거두었다고 가족들이 밝혔습니다.  로버트 맥나마라장관의 생애를 조명해 봅니다.

1961년,  45세의  로버트 스트레인지   맥나마라는   미국 제 2의 자동차 제조기업, 포드사의 고액  간부직을  뒤로하고 워싱턴 정가로 향해,  제 35대  죤 에프 케네디와   제 36대  린든 죤슨 두 대통령의 국방장관 을 지냈습니다.

워싱턴 정가에 발을 내디딘 첫 순간부터, 맥나마라는,  훤칠한 키에 테없는 안경, 그리고  뒤로 치켜넘긴 독특한  머리형으로  누구나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맥나마라는  1916년, 미국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버클리에 있는 명문,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를 우등 졸업한뒤, 하바드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중에는 육군 항공대에서 복무하면서  중령계급에 오르기도 한 맥나마라는, 종전후,  포드사에 기용된뒤, 뛰어난 관리기술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맥나마라의  생애는 무엇보다,  베트남전쟁개입으로 영구 각인될 것입니다.  맥나마라는  결국에는  미군 5만  8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베트남 전쟁개입 확대 정책의 핵심 입안자 로 여겨집니다.      

1964년,  36대 린든  죤슨대통령이 취임했을때, 맥나마라는 강경매파라는 정평이 났습니다.  맥나마라는 당시  미국은 베트남에서  맹공을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남  베트남이 자력으로 전투를 수행할 의지로 있는 이상 미국은 전술적 지원으로 군사훈련만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입장은 얼마않가 극적으로 변해,  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에 미국은 신속히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나서,  1968년 6월까지  베트남에는 50만명의  미군 병력이 배치되었습니다.   맥나마라를 비롯해 당시 미행정부 고위정책 입안자들은 이른바, 도미노 이론을 추종했습니다. 

공산당이 남부 베트남을 장악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동남아 전역이 공산당수중에 넘어가고, 멀리 파키스탄과 필리핀, 인도네시아등지에 까지 파급효과가 미치게 될것이라고 맥나마라는 경고했습니다.  이는  장기적이고 험난한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남부 베트남의 승리를 지원해야 한다고 맥나마라는 주장했습니다. 

맥나마라는  최장기  국방장관이었습니다.  구 소련방과 정면 대결국면을 초래했던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사태때에도 맥나마라는    피그만 침공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미중앙정보국의 지원을 받았던 쿠바 망명단체가  당시 쿠바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정부 전복에 실패하자  미국의 침공은 불발로 끝났습니다. 

맥나마라가   젊은시절 열렬히 주창했던 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것은 베트남전쟁 패배, 20년후인 1995년, 회고록을 통해서였습니다. 

케네디대통령과 딘 러스크국무장관, 합참의장 그리고 자신은 모두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다며  맥나마라는,  서방측이  힛틀러에 뒤늦게 대응했기 때문에 2차대전중 수백만명의 인명이 손실되었다 는 쳐칠경의 말을  기억하며  당시 미국지도부는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재패를 획책하려는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968년에 접어들면서 맥나마라는 베트남전쟁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죤슨대통령을 포함해  백악관의 강경파 보좌관들에게  베트남 정책의 온건한 변화를  맥나마라는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맥나마라는 국방장관직을 사임하고  세계은행 총재로 이직해 13년간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은   가족모두에게 심한 부작용을 낳아, 부인과 아들이 모두 위궤양을 앓았다고 맥나마라는 털어놓았습니다.

그만큼 베트남전쟁은 해결책이 없는 문제였기에  가족모두에게 심한 충격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3년 영화제에서 수상작품으로 선정된  기록영화,  전쟁의 농무 (Fog of War) 의 제작진은  이전에 오만한  강경매파  전문 관리자로  인식되었지만,   케네디와 죤슨 두 대통령과의 실제 대화 내용을 검토한 결과   맥나마라에 대한 그 같은 묘사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들어 났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