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년 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는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남북관계를  정리해 드립니다.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남북 화해 정책을 추구해 왔습니다. 또 이를 위해 노 전대통령은 지난 2007년 10월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와 국내 지지 기반 약화로 이렇다 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2003년 2월 한국의 제 16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취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전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 받아 남북화해를 추진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 후 노 대통령의 대북 정책 참모인 이종석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이를 구체화한 '남북 화해와 평화 번영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이 정책의 골자는 3가지였습니다. 우선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정책 구상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핵 개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5년 2월 핵 보유 선언을 한이래 영변의 핵 시설을 재가동 했습니다. 이어 2007년 7월에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데 이어 10월에는 핵실험까지  강행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정책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보유를 막겠다고 했는데 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또 한국이 주도하겠다던 대북 핵협상의 주도권도 미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자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6자회담 참가국인 한국의 노무현 정부도 이 제재 결의에 동참했습니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정부시절 한국과 미국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11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격노를 샀고, 한-미 양국은 한동안 불편한 관계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을 갖고 '10.4 선  언'에 합의했습니다. 8개항에 걸친 10.4선언은 남북 군사회담 그리고 경제 협력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국민적 공감대 없이 추진됐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보수파들은 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퍼주기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10.4 선언 이행에 너무 많은 돈이 드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한국 정부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한 10.4 선언을 모두 이행을 하려면 14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불과 4달 뒤에 대통령직에서 물러 났습니다. 그 후 남북관계는 10.4 선언 이행 문제와 핵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 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