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을 끌어온 스리랑카 내전이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스리랑카 정부 군은 지난 18일 타밀 호랑이 반군의 최고 지도자를 사살하고 궁지에 몰린 반군을 소탕하는데 성공했는데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어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백성원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문) 이번 주 초 각 언론 국제면을 가장 크게 장식한 뉴스가 바로 스리랑카 내전 종료 소식이 아닌가 싶은데요. 타밀 호랑이 반군 최고 지도자의 사망이 바로 반군의 와해로 이어졌죠? 

답) 그렇습니다. 스리랑카 정부 군이 지난 18일 스리랑카 타밀 반군의 최고 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을 사살하고 반군 잔당을 격퇴하면서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내전이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스리랑카 국영 텔레비전은 이날 정부 군이 타밀 호랑이 반군 지도부 전체를 소탕했다는 소식을 특집방송을 통해 전했는데요.  현지 방송 일부를 들어보시죠.

정부 군의 공격으로 타밀 반군 최고 지도자 프라바카란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프라바카란과 다른 2 명의 반군 지도자는 구급차를 타고 교전 지역에서 탈출하려다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 프라바카란의 죽음으로 타밀 반군 지도부가 완전히 와해됐고 결국 반군 전체의 패배로 이어졌는데요. 그만큼 반군 사이에서 프라바카란의 입지가 강했다는 걸 의미하죠? 

답) 그렇습니다. 프라바카란은 타밀 호랑이 반군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전 기간 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그가 없다면 반군 전체가 붕괴될 것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제기돼 왔는데 이번에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문) 정부 군 측은 국토 전체를 테러집단으로부터 해방시켰고 또 반군이 장악했던 전 영토를 되찾았다고 발표했는데요. 스리랑카 국민들, 상당히 들떠있겠군요. 

답)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사흘째 축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스리랑카인 1천 명은 영국대사관 앞에서 썩은 계란과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반군 소탕과 영국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시민들이 항의 표시를 했나요?) 영국이 스리랑카 정부의 전쟁 범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스리랑카인들은 영국의 그런 요구를 반군에 대한 동조적 태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시위 현장 소리 들어보실까요? 

문) 영국이 전쟁 범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는데 결국 반군 소탕 작전 중에 정부 군이 민간인들을 희생시켰다는 지적 때문이죠?

답) 맞습니다. 영국 뿐만이 아니구요. 미국도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를 무시한 스리랑카에 대한 구제금융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만큼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큰데요. 특히 내전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반군 지역에 갇히게 됐는데요. 정부 군이 이 곳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서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는 비난이 큽니다. 비록 타밀 호랑이 반군이 완전히 소탕되긴 했지만 스리랑카 정부가 이런 부분으로 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 마지막 전투가 특히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장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답)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입니다. 타밀 반군이 최후 항전을 벌인 곳은 스리랑카 동북부 지역인데요. 반경 1킬로미터도 안 되는 좁은 지역입니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은 이 지역에 갇혀 부상당한 이들을 구조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지역에 대한 외부 구호요원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언론 취재도 제한돼 있어서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타밀족 난민들의 안전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문) 아시아 최장기 내전을 끝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한 둘이 아니군요.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 내전, 어떻게 발생하게 됐는지 잠깐 짚어볼까요? 

답) 예. 내전의 출발점은 불교를 믿는 싱할리족과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 간의 오랜 반목입니다. (2백 년이 넘었다고 하죠?) 예. 스리랑카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싱항릴족은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권력을 독점하면서 소수민족인 타밀족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실시했는데요. 지난 1983년 타밀족이 분리주의 무장투쟁으로 맞서면서 기나긴 내전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결국 8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남긴 채 상처투성이로 내전의 막을 내리게 된 것이죠. 

문) 한 때는 타밀 호랑이 반군이 스리랑카 영토의 거의 3분의 1을 장악하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해서 세력이 이렇게 약화됐나요? 

답)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우선 프라바카란의 비타협적인 투쟁노선이 몰락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타밀족은 2002년 평화 협상을 통해 실질적 자치를 얻을 수도 있었기 때문인데요. 프라바카란이 평화 협정 뒤에도 테러를 중단하지 않고 투쟁을 고수하다 고립에 처했다는 겁니다. 또 1991년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 암살 사건으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고조시키고 자금줄을 끊기게 한 점도 중대한 실책이었다는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