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진보 성향 지식인이자 소설가로 유명한 황석영 씨가 이명박 대통령을 중도실용론자로 평가하면서 한국의 진보 성향 정당들을 노동조합 수준에 멈춰있다고 비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냉전 시절인 지난 1989년 정부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되기도 했던 황석영 씨의 이번 발언으로 한국사회가 이념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진보 성향 지식인 황석영 씨가 이명박 현 정부를 중도 실용정권으로 우호적으로 평가하면서 진보 정당들을 비판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황 씨의 발언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2개국 순방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황 씨는 지난 13일 카자흐스탄 수도인 아스타나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 그리고 14일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잇따라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일각에선 이명박 정권을 보수우익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스스로는 중도 실용정권이라고 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중도적 생각을 뚜렷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봤다"고 말했습니다. 또 중도노선이 정책에 반영되지 못한 것은 광우병 논란으로 촉발된 집권 초기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겪은 때문으로 설명했습니다. 

"중도 진영을 선언을 하고서 출발을 했는데, 꼬이면서... 촛불시위 하면서 그런 노선을 견지하면서 실제 정치에서 펴 나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던 것 같죠?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전향적으로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황 씨는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정부가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 민간단체에서 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대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현 정부에서 남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우려했습니다. 

황 씨는 또 자신이 대표적 진보 성향 지식인으로 인식되어 온 데 대해 "지난 2005년부터 중도론을 얘기한 사람"이라며 스스로 중도론자라고 규정했습니다. 

진보 정당에 대해선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황 씨는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문제나 외국인 근로자 문제까지는 못 나가고 그저 노동조합 정도에서 멈춰 있다"며 한국의 진보 진영이 두 개 정당으로 분열된 데 대해서도 한국사회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때문으로 진단했습니다. 

"진보연합 하고 노동당이 분열된 부분이 참 안타깝고, 사민주의라든가 또는 노동조합주의 라든가 등등으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한국사회가 첨예한 정책적 가치를 서로 주고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황 씨는 그러나 전임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규정하는 보수세력에 대해서도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의 정책을 봤을 때 그게 어디 좌파 정권이냐"며 비판했습니다. 

황 씨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사회에 큰 반향을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들 사이에선 대표적 진보 지식인이면서도 노벨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작가로 인식돼 그 영향력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보 진영은 황 씨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14일 평화방송 라디오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황 씨의 발언에 대해 "진보에서 하루 아침에 보수로 전향 선언을 하는 행보"라고 비난했습니다.  

"서민경제, 민주주의 거기다 남북관계 등도 위기일발로 몰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정권에 대해서 중도 실용주의로 이렇게 규정을 한다면 그러면 극우보수는 어떻게 해야 극우보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할 정도입니다"  

진보신당 당원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황 씨가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 이명박 당시 후보를 부패정치 세력이라며 집권 저지 성명서를 직접 낭독까지 했던 일을 상기시키며 "이 정도의 극적 변신이라면 욕할 가치도 없는 코미디"라고 비판했습니다. 

주요 언론사와 학계에서도 황 씨 발언을 놓고 논쟁이 뜨겁습니다. 

진보 성향 언론과 학자들은 황 씨의 발언을 변절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보수 진영에선 자연스런 가치관의 변화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황 씨의 과거 행적에 비춰 진정성에 의문을 갖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황 씨가 현 정권을 중도로 규정한 데 대해 긍정적인 분위깁니다. 

청와대 측은 "중도적 정책을 내놓더라도 제대로 수용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황 씨처럼 진보 논객이 중도 정권으로 성격규정을 해 주는 것은 어쨌든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황 씨 발언이 이념논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공주교대 윤리교육학과 박찬석 교수는 "한국사회가 지나친 좌우 이념갈등 때문에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사회도 마찬가지로 진보성향을 띄었던 사람들이 사회를 살면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그것에 대해서 크게 우려할 만한 바는 아니고 아직까지도 좌우 갈등이 너무 극렬하기 때문에 이런 발언들을 한 것에 대해서 날카롭게 보고 거기에 따라 재단을 하고 이런 면이 있는 걸로 해서 그러한 것들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뭐 크게 다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황 씨는 지난 1989년 3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변인 자격으로 평양축전이 열리던 북한을 정부 허락 없이 방문해 34일 간 머무르며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났습니다. 이후 일본과 독일 미국 등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1993년 4월 귀국과 동시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4년 11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수감 당시 자신을 면회 온 것이 인연이 돼 지금도 개인적으로 가끔 만나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황 씨는 "물밑에서 현 정부에 대한 충고와 고언을 하고 있다"며 "진보 측으로부터 욕먹을 각오가 돼 있고 큰 틀에서 현 정부에 동참해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