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내전중 민간인 대량학살을 자행한 크메르 루주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지난 달, 4월 30일, 프놈펜 법정에서  열려   당시의 참상이  생생히 드러 났습니다. 크메르 루주 폴 포트 살인정권의 반인륜적 전범들 가운데 악명높은 수용소 소장에 대한 이날 재판의 심리가 끝난뒤 법정은 다시 휴회에 들어갔습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 알아봅니다.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악명높았던  뚜옹 슬렝, 일명 S-21 형무소 소장이었던 카일 구엑 에아브 피고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전범 재판소에 출두해 심문을 받았습니다.  '도익'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66세, 카잉 구엑 에아브는  심문에서 S-21 형무소 등 지금은 킬링필드로 불리우는  수용소들에서 자행된 모든 일들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크메르 루주 정권의  제 2인자, 누온 체아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놈펜의 S-21 형무소, 소장이었던 도익 피고는  크메르 루주 정권당시  그런 수용소들이 전국에 1백96개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1975년부터 1079년까지 크메르 루주 정권이 설치한 수용소들에서는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백만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잉 구엑 에아브 피고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론 놀 정권에 대항한 크메르 루주 게릴라들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에서 1971년에  M-13수용소가 설치되었고 나중에 이를 원형으로 많은 수용소들이 생겨났다고 말했습니다. 도익 피고는 소장이던 자신은 채찍질과 전기충격을 고문에 사용했으며 그런 방식은  물고문 보다 간단하면서도 수감자들이 고문으로 숨질 확률이 적다고 말했습니다.

도익 피고가 관장했던 S-21 수용소에서만 1만6천 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이 고문을 당하고 살해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카잉 구엑 에아브에 대한  다음 재판은 이달 하순쯤 다시 열릴 예정입니다.

킬링 필드 수용소와 수감자 고문 등에 관한 카잉 구엑 에아브의 법정 진술로 수 많은 보통 캄보디아인들은 당시의 참혹상에 다시 한 번 치를 떨었습니다.

캄보디아 사회개발연구소의 테아리 셍 소장은 크메르 루주 정권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열린후  많은 캄보디아인들은 법정진술과 재판 진행에 관한 신문보도를 통해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참혹상을 새로이  알게되어 놀라고 있다고 말합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극단적인 마오쩌둥 주의 공산정권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잔혹행위를 자행하다가 1979년에 인접한 공산국, 베트남의 침공을 받아 축출됐습니다.  그러나 크메르 루주 잔당은 1990년대까지 밀림속을 근거지로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크메르 루주의 우두머리였던 폴 포트는 숨어지내다가  1997년에 체포됐으나  1998년, 전범재판에 회부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카잉 구엑 에아브는 캄보디아 정부와 유엔이 여러 해 동안 협상을 통해 설치된 인권법정에서 처음으로 재판을 받는 전범입니다.  카잉 구엑 에아브와 같은 킬링 필드 관련 전범들이 많지만 대부분 사망했으며 생존자들은 모두 고령이기 때문에  반인륜적 범죄로 재판을 받는 크메르 루주 전범들은 얼마 안될 것으로 보입니다.

캄보디아 사회개발 연구소의 테아리 셍 소장은  카잉 구엑 에아브의 법정 진술은 많은 캄보디아인들에게  과거의 참담했던 심경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당시를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들에겐 열띤 토론을 촉발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테아리 셍 소장은 도익 피고의 법정진술은 뒤늦게나마    반인륜적 가해자 자신이 직접 당시상황을 밝히고  또 잘못을 자백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도익 피고 등 전범들에 대한 재판은 너무도 암흑에 쌓였던 크메르 루주당시를 캄보디아 역사에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