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독일인 유골이 폴란드에서 대량으로 발견됐습니다. 당시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군했던 시기에 실종된 독일인들의 유골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2차 대전 피해국들이 그동안 언급을 꺼렸던 전시 독일인들의 희생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럽게 진행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독일인들의 시신이 묻힌 집단무덤이 발견된 거죠? 발굴된 유골, 사진으로 봤는데 엄청난 규모더군요. 몇 구나 됩니까?

기자: 네, 유골이 2천 구나 나왔습니다. 어른과 어린이, 남자와 여자 모두 포함돼 있구요. 발굴 장소는 폴란드 북부의 '말보르크'라는 마을입니다. 지금은 폴란드 영토지만 2차 대전 당시에는 독일에 속했던 지역입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유골이 모두 당시 그 지역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의 것이라는 얘기죠?

기자: 그렇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군이 독일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 베를린까지 진군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말보르크 지역을 거쳐 진군하는 과정에서 현지의 독일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번에 발굴된 유골이 60년 전에 이 지역에서 실종 처리된 수많은 주민들의 시신이라는 겁니다.

진행자: 그 지역에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독일인들의 시신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당시 접경 지역인 폴란드 주민들도 포함돼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기자: 물론 지금 '말보르크' 마을에는 폴란드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온 시기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뒤입니다. 소련군이 밀고 내려온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거의 독일인이었다고 하구요. 또 발굴 책임을 맡고 있는 현지 고고학자도 유골이 독일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진행자: 학살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오래 전 일이라 밝혀내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목격자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구요.

기자: 그래서 학살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요. 1945년 초에 소련군이 독일을 향해 진군해 오자 말보르크 지역에 피난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은 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들은 소련군의 엄청난 폭격에 시달렸습니다. 피난을 떠났던 주민들이 이 지역을 다시 찾았지만 다른 생존자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어진 것이죠.

진행자: 유골을 살펴보면 뭔가 단서가 될만한 흔적이 있지 않을까요?

기자: 발굴된 유골 가운데 1백 개가 넘는 성인 두개골에서 총알 자국이 발견됐습니다. 일부는 처형됐다는 증거죠. 나머지 시신들은 어떻게 살해됐는지 알기 힘듭니다. 유골들은 모두 옷이 벗겨진 상태로 발견됐는데요. 그 많은 유골과 함께 발견된 소지품은 안경 2개가 전부라고 합니다.

진행자: 신원을 확인하기가 더 어렵겠네요.

기자: 네, 관련된 단서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유골이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들 것이라는 결론은 내린 것 같습니다.

진행자: 유골들은 아주 우연한 경위로 발견됐다고 하죠?

기자: 정말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또 발굴 장소도 외진 숲 속이나 농촌 지역이 아니었구요. 폴란드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 한 곳 바로 앞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원래 현지에는 고급 호텔이 들어설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부들이 기초 작업을 하느라 땅을 팠는데 유골 몇 구가 나온 것입니다. 그 때가 지난 해 10월 말이었는데요. 그 뒤 몇 주가 지나고 다시 공사가 진행됐는데 유골 몇 십 구가 나왔고… (인부들이 놀랐겠는데요) 그러던 것이 금세 몇 백 구가 되고, 곧 1천 구가 훌쩍 넘어 버린 것입니다.

진행자: 그동안 세계 대전의 희생자로 독일인들이 거론되는 것은 드문 일 아니었습니까? 나치 독일의 침략에 희생된 이웃 국민들의 분노가 워낙 컸기 때문에 독일인들도 학살됐다, 이런 얘기를 대놓고 하는 게 금기시돼 온 측면이 있어요.

기자: 맞습니다. 그렇지만 2차 대전 당시까지 독일 영토에 속했던 지역에 살던 독일인들, 그 중에서도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논의가 최근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거죠. 특히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인 폴란드에서조차 이번 유골 발굴 과정에서 인간적인 아픔을 느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진행자: 참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군요. 물론 히틀러가 이끌었던 독일군이 수많은 학살을 자행했지만 독일인들 역시 많이 희생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처럼 대량 학살 당한 경우도 있었구요.

기자: 그 부분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중부와 동부 유럽에 살던 약 1천2백만 명의 독일인들이 실향민이 됐습니다. 그 수가 1천6백5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구요. 이들 중에서 2백 만 명 이상이 각지로 흩어지면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살해된 것이 사실이구요.

진행자: 그래도 아직 독일은 세계 대전의 가해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런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에는 이르다는 인식도 여전하죠?

기자: 당사국인 독일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이번 유골 발굴만 해도 독일 언론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습니다.

진행자: 일종의 집단 죄 의식이라고 봐야겠죠?

기자: 그보다는 자칫 독일이 자국민의 피해 상황을 거론할 경우 나치 독일의 피해를 입은 주변국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독일이 세계 대전 당시 잃어버린 영토에 대한 실지 회복을 시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일으킬 수 있구요.

진행자: 폴란드에서 2천 구의 독일인 유골이 발견된 소식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