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일 동안 한국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뉴스를 통해 한국 사회의 흐름을 알아 보는 강성주 기자의 서울통신입니다. 서울의 강성주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알아봅니다.  

[질문1] 이번 주 한국 언론을 보면 많은 소식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가장 눈길이 갑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장례식이 20일 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장례는 오늘 (지난 20일) 서울 명동성당과 장지인 경기도 용인 묘역에서, 교황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김 추기경이 소속돼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애초 서울대교구장으로 장례를 치루려고 했으나,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을 고 김 수환 추기경 장례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의 특사로 임명해, 김 추기경의 장례를 교황장으로 치루도록 한 것입니다. 

지난 16일 저녁 87살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닷새째이자 마지막 날인 오늘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는 한승수 국무총리와 주한 외교사절, 사제, 신도 대표 2백30명 등 모두 8백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열고, 김 추기경과의 마지막 작별의식을 가졌습니다.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교황의 이름으로 장례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되었고, 모든 한국인에게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라고 고인을 애도했습니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김 추기경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가톨릭 성직자 묘역으로 운구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김 추기경의 묘비에는 김 추기경의 사역 표어였던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글귀와, 김 추기경이 가장 좋아했던 성경 귀절인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 이렇게 두 줄이 새겨졌습니다.  

[질문 2]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고 난 뒤, 수십만 명의 한국인들이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명동성당을 방문했다면서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월요일인 지난 16일 저녁 6시 좀 지나서 선종했습니다. 추기경의 시신은 그날 밤 서울 시내 강남 성모병원에서 명동성당으로 옮겨져서 일반인들의 조문을 받았는데, 16일 밤 1만5천 여명, 17일 9만 여명, 18일 15만 여명, 마지막 날인 19일 15만 여명 등 추모객이 40만 명을 육박했습니다.  

18일과 19일에는 추모객들이 만든 줄이 명동 일대를 돌고 돌아 2,3 킬로미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추모객들은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된 유리관 앞에서 몇 초간의 짧은 추모를 위해 몇 시간 씩 추위 속에서 기다리며, 마음 속으로 평화와 사랑, 이해를 되뇌었습니다. 지역과 종교, 정파, 이념을 떠난 통합의 지난 며칠이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과 정당 지도자 등 공직자들은 물론 종교와 지역, 나이를 초월한 전 국민적인 추모를 받았습니다. 

[질문 3] 이렇게 예상을 뛰어 넘은 추모 열기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기자] 답변하기가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면, 한국민들은 우선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평생을 올곧게 살아온 김수환 추기경을 마음 속에서 흠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민 1] "고통 받고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어떤 한 계층을 대변하시는 분이라기 보다는 사람 전체를 사랑하시고 사람 전체에게 옳은 게 뭔지 항상 생각하시는 분이셔서 " 

[시민 2] "너무 감사하고 너무 없는 사람을 도와주면서 사랑하라는 제일 그 말이 남죠 "

[시민 3] "사랑하라는 말씀하고 고맙습니다. 또 다 용서하라는 말씀, 그런 말씀이 있는 걸로 압니다. 우리 사회에 제일 절실하게 필요한 말씀 아닌가 뭐든 어렵거나 할 때 절실한 말씀 같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은 사실 지난 40년 이상 한국사회에서 큰 등불이었고, 어른의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정이 핵가족화되면서, 집안에 어른이 없어졌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크게 봐서 한국사회 전체에서 바른 말을 하는 어른들, 즉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려움을 처했을 때 마다, 바른 말을 해서 당시 정치 지도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는 말을 해 줌으로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 지도자였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으로 임명된 지난 1969년 이후 40년 동안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를 넘어 민족의 지도자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베네딕다 수녀, 프랑스 노틀담수도회] "70년대 초반 그리고 오늘날까지 항상 강조하셨던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함께 하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옆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어라 마음을 읽으라고 그러셨어요. 그 다음에 행동으로 보여줘라 그리고 이번에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나는 하느님한테 사랑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시면서 여러분들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그 분의 삶 전체였죠.

또 지역과 이념 등 이해 관계에 따라 갈갈이 찢겨져 있는 현 한국사회에서 구심점이며 희망이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박원순 변호사와 이어령 전 장관의 추도의 말입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의 삶과 정신과 영혼의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에 대한 추모는 우리 사회에 지향해야 될 방향인 국민소득 3만 불, 4만 불이 아니라 좀더 행복하고 편안한 사회를 바라는."


[이어령, 문학평론가] "종교적인 솔루션이 종교에만 이뤄지지 말고 정치 문화 사회에서 일어난다면 이해관계가 다르고 지역이 다른 사람들이 모일 수 있지 않느냐 그것은 김수환 추기경이 세속적 이해관계를 뛰어 넘은 비전이 있다."

[질문 4] 김수환 추기경은 이번 장례 기간 동안 로마 교황청도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민들로부터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김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국사회가 받은 영향도 상당할 것 같은데, 정리해 볼까요? 

[기자] 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한국민들의 애정과 존경이 이렇게 깊은지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이것은 김 추기경에게 잠시 동안의 추모를 위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명동성당에 몰린 추모행렬이 이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말씀드렸듯이, 한국사회가 지금 너무 갈갈이 찢겨져 있다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많은 국민들이 고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 추기경은 평소 더욱 서로 사랑하라, 이해하라, 용서하라 이렇게 강조해 왔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되돌아 보도록 했습니다. 사실 김 추기경은 70, 80년대 정권 담당자들로부터는 반 정부 세력의 배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고, 2000년대 들어서 젊은 386세대로부터는 과거의 민주화 행적이 과대 평가된 거 아니냐는 수모의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양쪽의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국사회의 민주화, 또 최근에는 북한의 민주화, 인권, 용서, 사랑 등의 가치를 위해 한 길을 걸어왔고, 그 것이 오늘의 평가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질문 5]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북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도 마음 아파했다면서요? 

[기자] 그렇습니다. 김 수환 추기경은 1975년부터 1998년까지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라는 두 가지 직함으로 활동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그렇지만 평소에 평양을 오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늘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마음 아파해 왔습니다. 23년 동안이나 평양 교구장 서리를 했으면서도 양떼들을 찾아가보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민족화해 미사가 열립니다. 김 추기경이 지난 1995년 천주교 주교회의 내에 민족화해위원회를 설치한 뒤부터 시작된 북한과 북한 동포를 위한 미사입니다. 

또 김 추기경은 은퇴한 뒤인 지난 2002년에는 북방 선교에 투신할 사제들을 양성하기 위해 자신의 아호를 딴 옹기장학회를 설립해 북한 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들을 돕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