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소식과 화제를 전해드리는 미국은 지금 시간입니다. 오늘도 김정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문) 미국에서 2월은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나 사건을 기념하는 '흑인 역사의 달'입니다. 이 흑인 역사의 달은 노예해방을 선언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흑인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노력한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생일이 2월인 것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것이죠? 특히 최근에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해, 올해의 흑인 역사의 달은 어느 해보다도 의미가 깊다고 하겠는데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말고도, 이번 달에 흑인들에게 뜻깊은 일이 하나가 더 있지 않나요? 

(답) 그렇습니다. 바로 미국 최대의 흑인 인권운동 단체인 전미 유색인 지위향상협회, 영어 약자로 NAACP가 지난 12일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문) 이 NAACP는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나요?

(답) 네, NAACP의 역사는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당시 32명의 저명한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유색 인종, 특히 흑인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있던 한 호텔에 모인 것이 NAACP가 결성되는 계기가 됩니다. 

(문) 당시 흑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나요?

(답) 물론 당시에는 흑인들에게 갖가지 차별과 폭력이 가해졌죠? 특히 1890년부터 1908년 사이에 남부 주들을 중심으로,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려는 법들이 만들어져, 흑인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힙니다. 또 거의 매년 인종 분규가 일어나서, 무고한 흑인들이 많이 목숨을 잃게 되는데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일단의 흑인들이 조직을 결성하려고 움직인거죠? 1905년에 첫 모임을 가진 NAACP는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09년 2월 12일, 이날은 또 링컨 대통령의 생일이기도 한데요, 바로 이날에 맞춰서 공식 출범하게 됩니다. 

(문) 사람들은 이 NAACP가 흑인들만을 위한 조직으로 알고 있는데, 창립 초기에는 백인들이 이 조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죠?

(답) 그렇습니다. 조직의 이름에도 나와 있듯이 유색인종이라 하면, 백인이 아닌 인종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니까, 이 조직이 단지 흑인들만을 위한 조직이라고는 할 수 없겠죠? NAACP는 초기에는 조직의 지도부가 거의 백인이나 아니면 유대인으로 구성됐습니다. 흑인 회장은 지난 1975년에 와서야 선출될만큼, 이 조직은 다양한 인종구성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특이한 점은 미국내 유대인 공동체가 이 NAACP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을 유색인종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미국안에서 차별을 받던 입장은 흑인과 같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 조직을 지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됐든, 이런 연유로 현재도 NAACP와 유대인 공동체는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문) 자, 노예해방을 선언한 링컨 대통령의 생일에 출범한 NAACP, 20세기 초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벌이죠? 

(답) 그렇습니다. NAACP의 초기 활동은 주로 매해 벌어지던 흑인들에 대한 폭력 행위를 조사하고 이에 대처하는데 집중됐습니다. 이외에도 NAACP는 활동 초기부터, 흑인들의 권익을 위해 각종 법정 투쟁을 벌여 나가는데요, 그 첫 결실이 바로 1917년에 나옵니다. 바로 부캐넌 대 월리 재판인데요, 이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은 주정부나 지방 정부들이 공식적으로 흑인들을 다른 인종과 분리된 지역에 살도록 만들 수는 없다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이 판결은 이후 NAACP가 이룩하는 업적들의 하나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었죠.

(문) 미국은 지금, 오늘은 창립 100주년을 맞은 전미 유색인 지위향상협회, NAACP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창립돼 줄곧 흑인 인권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나가던 NAACP는 1950년대에 역사적인 한 재판에서 승리를 거두죠? 

(답) 그렇습니다. 이 재판은 그 유명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재판입니다. 이 재판의 판결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면, 주정부가 초등학교에서 흑인과 백인 학생을 분리시켜 교육시키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라는 내용입니다.

(문) 지금보면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로서는 아주 혁명적인 판결이었는데요, NAACP의 이런 노력들은 이후 60년대 민권운동으로 연결되면서, NAACP는 전성기를 맞게 되죠?

(답) 그렇습니다. 바로 1964년에 공공장소에서 인종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그리고 투표권 행사에 있어서 인종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투표권 법이 1965년에 제정됨에 따라, NAACP의 활동은 정점에 달하게 됩니다. 이런 영광의 시기를 보낸 NAACP는 이후에도 수십만명의 유권자가 투표 등록을 하는 것을 돕고, 각종 집회나 행진을 주도했고요, 미국안에서 인종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문) 60년대 미국을 휩쓴 민권운동을 주도했던 NAACP지만, 현재는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지적도 있던데요?

(답) 네, 회원수로만 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요, NAACP의 회원수가 정점에 달했던 것은 지난 1964년입니다. 이 해에 NAACP의 회원수는 60만명에 달했는데요, 현재는 약 22만 5천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온 시대에 NAACP같은 조직이 아직도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는군요.   

(문) 회원수가 줄어들고 또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현재 미국 사회에서 NAACP가 해야할 일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겠죠?

(답) 그렇습니다. 현재 NAACP는 학교내 불평등 문제, 경찰의 무차별 총격 그리고 주택 압류문제 등 생활과 밀접한 불평등 문제를 시정하는데 활동의 초점을 맞추며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고 합니다. 벤저민 토드 젤러스 NAACP대표는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 기념비적 사건이기는 하지만, 인종적 불평등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NAACP는 과거 대통령들에게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종적 평등을 실현시키기 위한 압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