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소식과 화제를 전해드리는 미국은 지금 시간입니다. 이 자리에 김정우 기자, 나와 있습니다.

(문) 지난 시간에 2월 12일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찰스 다윈 얘기를 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이 링컨 대통령 얘기를 좀 더 해볼까요?

(답) 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링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이제까지 이 링컨 대통령에 대해 영어로 쓰여진 책이 약 1만 6천 권에 달한다는 것을 보면 링컨이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죠?

(문)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의 승리로 미국 역사에서 영웅 취급을 받는 링컨 대통령이지만, 이런 면 말고 링컨 대통령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답)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링컨 대통령의 모습은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자상하고 친절한 아저씨의 모습이죠? 하지만 링컨 대통령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놀라운 사실들도 많습니다.

(문)그렇다면 우리가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링컨 대통령의 모습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은데요? 최근에 등장한 링컨 대통령에 대한 주장 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링컨 대통령이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없앴지만, 실은 그가 인종주의자였다는 주장이지요?

(답) 그렇습니다. 아주 놀라운 말이죠? 노예제를 없애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던 전쟁까지 벌였던 사람이 실은 인종주의자였다는 그런 말인데요,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링컨 대통령은 젊은 시절에 인종문제와 관련된 말을 할 때, 흑인을 비하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군요?

(문) 링컨 대통령이 1863년, 정초에 발표한 노예해방선언문도 실은 미국 전역의 노예를 해방시킨다는 내용은 아니었다고 하던데요?

(답) 그렇습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조치는 처음에는 남부 주에 있는 노예들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남북전쟁 기간을 전후해, 링컨 대통령의 관심은 노예의 해방보다는 연방의 분열을 막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링컨 대통령은 만일 단 한 명의 노예도 풀어주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군요?

(문) 링컨 대통령은 처음에는 불리하던 전황이 나중에 연방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노예해방 조치를 미국 전역에 확대하게 된거죠?

(답) 그렇습니다. 노예제나 흑인에 대해 링컨 대통령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느냐에 상관없이, 노예해방조치는 남북전쟁 막바지에 미국 전역으로 확대 시행되고요, 결과적으로 연방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링컨 대통령은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된거죠.

(문) 링컨 대통령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수호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면서요?

(답) 그렇습니다. 실제로, 링컨 대통령이 내전 기간중 취한 조치들을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미국 대통령이 맞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지요. 전쟁기간중, 링컨 대통령은 언론을 통제했고요, 의회의 승인없이 남부 연합에 대한 봉쇄조치를 내렸습니다. 또 ‘Habeas Corpus’ 라고 하죠? 이 규정은 법적인 문제 때문에 구속된 사람이 적법하게 구속됐느냐를 법원이 판단하도록 하는 원칙인데요, 서양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원칙도, 링컨 대통령은 내전기간중에 무시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역시 의회의 동의없이 정부 예산을 집행했고요, 남부 연합에 동조하는 1만 8천명을 재판없이 감옥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수 만명을 재판없이 구금한 사실을 두고, 펜실배니아 주립 대학교의 마크 닐리 교수는 링컨 대통령은 부시 전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존 애쉬크로프트 씨와 흡사한 인물이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 링컨 대통령이 이 애쉬크로프트 전 장관과 비슷하다고 하는 말은 애쉬크로프트 전 장관이 테러용의자들을 재판없이 구금하는 정책을 취한 것을 빗대는 말이겠군요? 그런데 링컨 대통령의 이런 공적인 면 말고도, 사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운 점들이 있더군요?

(답) 그렇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평생, 우울증에 시달린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이런 우울증 때문에 링컨 대통령이 자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 것도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들이 모두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또 링컨 대통령은 공공장소에서 자주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링컨 대통령을 미국 최초의 울보 대통령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렸던 링컨 대통령, 이런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농담을 하거나, 책을 소리내어 읽고 또 슬픈 시를 낭독하는 것을 즐겼다고 하는군요.

(문) 지난 시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링컨이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는 주장도 있었구요?

(답) 조금 의외죠? 많은 사람들이 링컨 대통령이라 하면, 그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요, 일부 역사학자들은 실지로 그가 무신론자였거나, 아니면, 신의 존재를 믿어도, 그 신이 꼭 기독교의 신은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링컨 대통령은 평생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한 적이 없었고요, 연설에서 자주 하나님을 언급하거나, 성경 구절을 인용했지만,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수를 언급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문) 링컨 대통령의 사생활에서도 여러 논쟁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답) 그렇습니다. 이런 쟁점 중에서 가장 선정적인 주장은 바로 링컨 대통령이 동성연애자였다는 주장입니다. 특히나 젊은 시절 링컨 대통령이, 조슈아 스피드란 사람과 맺었던 관계를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선, 아직까지 전문가들은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외에도, 링컨 대통령이 낭비벽이 심한 부인, 메리 링컨 때문에 평생 시달려서, 아주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는 주장도 있지요?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 부인 메리 링컨이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인들은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링컨을 자주 꼽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대해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정적인 면들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링컨 대통령은 미국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미국을 지켜낸 지도자였다는 점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합니다. 김정우 기자, 다음 시간에 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