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의사와 한의사로 일했던 탈북자들이 수 년 간의 노력 끝에 국가고시에 나란히 합격해 한국에서도 의사의 꿈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북한에서 청진의학대학 동의학부를 졸업하고 8년 간 한의사로 일하다 지난 1999년에 탈북한 43살 김지은 씨는 지난달 30일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외출 중에 합격 통보를 받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는 김 씨는 힘들었던 시간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밖에서 그 소식을 들었는데 어떤 건물 안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생각나서 울었는데 너무 기쁘다 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그 시절이 다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구역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던 김 씨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어린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탈북하기로 결심, 중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온 뒤 지인의 말에 속아 다단계 사업으로 정착금을 날리기도 했던 김 씨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한의사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지만 응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통일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김 씨의 학력을 인정했지만 한의사 시험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북한에서의 졸업장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막막한 마음에 자살까지 염두에 뒀다는 김 씨는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에 2004년 8월 "한의사 자격 취득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국회에 청원서를 냈습니다.

관계 부처들이 논의한 결과 대학에 편입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김 씨는 이듬해인 2005년 세명대학교 한의대 본과 1학년에 편입한 뒤, 학업에 전념한 결과 그토록 원했던 한의사 자격증을 따냈습니다.

북한에서 15년 간 한의학을 공부한 김 씨였지만 한국에서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기까지는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선 한문을 사용하지 않아 공부할 때 어려움을 겪었고, 외국어로 러시아어를 배웠던 터라 영어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20살 넘게 차이가 나는 남한 학생들과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습니다.

하루 5시간 잠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놓고는 공부만 했다는 김 씨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힘들게 얻은 기회인 만큼 죽을 힘을 다했다"며 "돈을 많이 버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따뜻한 인술을 펴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어린 생명들이 많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의사로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김 씨는 "북한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도 밝혔습니다. 

"북한에서 의사 생활을 할 때 아이들을 치료를 잘 하지 못해 아이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의사 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살리지 못해 아픔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속죄하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의료기구나 약품을 지원하고도 싶습니다. "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과 관련해 김 씨는 "북한에서 전문직에 종사했던 탈북자들의 경력을 인정해 자기 능력을 마음껏 펼치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며 "통일이 되면 그 누구보다 이들이 국민통합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탈북자들이 물론 한국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만 재교육 형식으로 공부를 시켜 그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합니다. 정착 못한다고 하지만 말고 정착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에서 탈북자들을 잘 활용한다면 통일에 도움이 되는 강력한 고지가 탈북자라고 봅니다. "

함흥의학대학을 졸업하고 6년 간 의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온 정성일 씨도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답답한 세월을 보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뒤 의사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정 씨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거나 예식장에서 결혼식 촬영기사로 근무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7년, 심사를 통해 학력이 인정되면 탈북자들도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정 씨는 기회를 얻었고 마침내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함흥의학대학에서 한의사를 양성하는 고려학부를 졸업하고 3년 간 한의사로 근무하다 탈북한 33살 이은지 씨도 한의사 합격이라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지난 2004년 한국에 온 뒤 5년 간의 노력 끝에 꿈을 이루게 된 이 씨는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땀을 흘린 만큼 결실을 얻을 수 있다"며  "앞으로 탈북자들을 위한 진료를 펼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남북에서 배운 한의학을 접목시켜 나만의 한의학 치료를 개발하고 싶습니다. 탈북자들이 언어적 경제적 정치적 장벽 때문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열심히 하면 이뤄지는 것도 있습니다. 이번에 느낀 것은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탈북자들도 열심히 하면 꿈이 이뤄지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