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바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은 국내 인종 차별의 마지막 벽을 허문 새 도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비행 청소년이었던 오바마가 워싱턴 중앙 정치에 입문한 지 4년 만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까지의 인생 여정을 조명해 봅니다. 

 바락 후세인 오바마는 1961년 미국 하와이에서 아프리카 케냐 출신인 흑인 유학생 아버지와 미국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당시만 해도 미국 내 많은 곳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투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식당과 대중교통 시설에는 백인과 흑인 공간이 따로 있을 정도로 미국 내에는 흑백차별이 곳곳에 만연해 있었습니다. 오바마 역시 학창시절 인종 차별을 여러 번 겪었고 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다 정학을 당하고 한때 술과 마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소년 오바마는 2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자카르타에서 10살 때까지 이슬람 학교와 가톨릭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다시 이혼한 뒤 오바마는 미국 하와이로 돌아와 청소년 시절을 외갓집에서 보냈습니다.


오바마는 지난 해 3월 인종에 관한 연설 중, 외할머니는 자신을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분이었지만 전형적인 백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는 "언젠가 외할머니는 길에서 흑인 남자들이 옆으로 지나가면 무섭다고 털어놨고, 종종 인종적 편견을 드러내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오바마가 어린 시절의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도약을 한 것은 그가 뉴욕의 명문 콜롬비아대학에 편입한 뒤 부터였습니다. 오바마는 자서전에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며 이 때부터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 이란 뜻의 '바락'이란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방황의 끝에는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의 역할이 컸습니다.

오바마는 자서전에서 "어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인정 많고 관대한 분이었고 내 안의 가장 좋은 부분들은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는 대학 졸업 후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진학해 흑인 최초로 이 대학의 권위 있는 법률 학술지의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이후 지역사회 발전 운동가와 법학교수, 인권 변호사로 시카고에서 활동 중 정치에 입문해 1996년 35살의 나이로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 당선됩니다.

이 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가 패배한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서면서 특유의 화술로 미국 정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오바마는 연설에서 자라온 배경을 소개하면서, "나의 부모님은 부자가 아니었어도 내가 최고의 학교에 진학하기를 꿈꿨다"며 "미국이라는 관대한 나라에서는 부자가 아니어도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는 그 해 11월 일리노이 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워싱턴 중앙정치 무대에 입문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흑인으로는 다섯번 째 상원의원이 된 것입니다.

오바마는 이어 워싱턴의 관료적 정치 구도를 바꾸고 국제사회로부터 미국의 신뢰를 회복시키겠다는 신념으로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오바마는 '변화'란 화두를 주도하며 유력한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물리치고 미국 역사상 흑인 최초로 민주당 대선 후보에 선출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11월 4일, 47살의 바락 후세인 오바마는 상대인 공화당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오바마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수락연설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 여기까지 왔다"며, "이제 미국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선언했습니다.

1963년 흑인 민권운동의 아버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를 연설한 지 45년만에, 그리고 흑인들이 1870년 투표권을 인정받은 지 138년 만에 흑인들의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