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의 테러 공격으로 대한항공 여객기 탑승객 1백15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내일(29일) 로 21년이 됩니다.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이 사건으로 북한은 이듬 해인 1988년, 미국 국무부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습니다. '대한항공 858 편 폭파 사건'의 내용과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조은정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MC) 조은정 기자. 우선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해 좀 설명해 주시죠?

조) 예.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KAL 858편 보잉 707기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기착한 뒤 다시 서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기내에는 당시 중동 건설에 참여했던 근로자들과 승무원 등 1백15명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객기는 29일 오후 버마 상공에서 무선보고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는데요. 사건 발생 15일 후 버마 해상에서 KAL기 구명보트 등이 발견되면서 비행 중 폭발에 의해 추락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MC) 그런데 이 사건이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점은 어떻게 밝혀졌습니까?

조) 당시 KAL 858 편이 중간 기착한 아부다비에서 내린 승객은 15명이었습니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2월 1일 바레인을 탈출하려던 폭파 용의자 두 명이 발견됐는데요, 이들은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 였습니다. 김승일은 체포 직전 독약을 깨물고 자살하고, 김현희는 체포돼 12월 15일 한국으로 압송됐습니다. 한국의 국가안전기획부는 수사 진행 한달 만인 88년 1월 15일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당시 발표 내용을 들어보시죠.

MC)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현희도 범행 사실을 자백했죠?

조) 그렇습니다. 김현희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고 88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고 남한 내 계급투쟁을 촉발할 목적으로 KAL 858기를 폭파했다"고 밝혔습니다. 김현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 공작명령에 따라 기내 좌석 선반에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한 폭발물을 놓고 내렸다고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MC) 당시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오지 않았습니까. 각국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조) 사건의 진상이 발표되자 미국은 즉각 1988년 1월 2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했습니다. 일본 정부도 같은 달 26일 북한외교관 접촉을 제한하고, 일본-북한 간 특별기의 일본 기항을 중지했습니다. 또 2월 10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소집돼 많은 국가들이 북한의 테러 행위를 규탄했습니다.

MC) 북한 정부도 범행을 시인했습니까.

조) 아닙니다. 북한과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총련은 한국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즉각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은 남한 정부가 군사정권을 연장할 목적으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MC)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21년이 됐는데요.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해 일부 의혹이 제기되고 있죠?

조) 예. 'KAL 858기 폭파 사건'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규명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안기부에 의해 기획된 자작극'이라거나 '북한의 테러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정략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는 등 의혹이 많이 제기됐습니다.

MC) 이 때문에 한국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이 3년 간 'KAL기 폭파 사건'을 재조사 했죠?

조) 그렇습니다. 지난 2004년 발족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년 10월 3년 간의 활동을 마감하며 보고서를 발표했는데요. '진실위'는 KAL기 폭파 사건이 북한에 의해 자행된 사건이며, 그동안 제기돼 온 '안기부 조작설' 등 의혹은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MC) '진실위'는 여러 의혹이 제기된 배경을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조) '진실위'는 "당시 안기부가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해 검증 없이 서둘러 발표됐다"며 "이로 인해 수사 결과에 일부 오류가 발생해 불필요한 의혹을 유발하는 원인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을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선거 전에 김현희를 압송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북괴 만행 규탄'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범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