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식 경제발전에 나선 지 다음 달로 꼭30년이 됩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은30년 전인 1978년 12월 18일,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선언했고, 이후 이른바 '죽의 장막'에 갇혀 있던 중국은 지난 30년 간 '중국 위협론'이란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오늘부터 네 차례에 걸쳐 '중국 개혁개방 30년'을 조망하는 특집을 보내드립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중국 현지에서 온기홍 기자가 중국의 개혁이 시작된 배경을 전해드립니다.

중국이 다음 달로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습니다. 개혁개방은 1949년 공산정권이 수립된 뒤 30년이 지난 1970년대까지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던 중국을 오늘날의 경제대국으로 바꿔놓은 원동력입니다.

중국 공산당 창시자인 마오쩌둥 국가주석이 1976년 사망한 뒤 지도자로 등장한 덩샤오핑은 1978년 12월18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그 때까지만 해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개혁개방을 주창했습니다.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두 체제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덩샤오핑은 이에 따라 낙후된 중국의 공업, 농업, 국방, 기술 등 4개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한 `4개 현대화' 를 제시했습니다.

[덩샤오핑 액트]
"하나의 당과 국가와 민족이 모두 한 권의 책(마오쩌둥의 저서)에서 출발하고, 사상이 경직되며, 미신이 성행한다면, 그 당과 국가와 민족은 전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존의 기회는 멈추고 말 것입니다. 또한 당과 국가를 망치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 개혁을 다시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현대화 사업과 사회주의 사업은 매장되고 말 것입니다. "

덩샤오핑의 야심찬 개혁개방은 사실 밑에서부터 시작됐고, 중국 남동부 안휘성 펑양현에 있는 샤오강촌이라는 한 작은 마을은 바로 그 시발점이었습니다. 마오쩌둥은 공산혁명으로 지주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인민에게 돌려줬지만, 결국 1960년대 인민공사를 통해 다시 토지를 회수했습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면서 인민공사 소유의 토지를 다시 농민들에게 되돌려줬습니다.

사오강촌은 이윤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국가 소유의 집단농지를 쪼개 농민들에게 토지경작권을 준 1978년 11월의 이른바 '가정 승포(承包) 경영제'가 처음 시행된 현장입니다.

다바오간(大包干) 제도라고도 불리는 '가정 승포(承包) 경영제'는 농민이 국가로부터 토지를 임대해 일정 생산량을 국가에 상납한 뒤 나머지는 개인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농업생산 청부제를 뜻합니다. 중국에 자본주의 요소가 도입된 셈입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샤오강촌 농민들은 생산량의 일부만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개인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몸을 바쳐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에 따라 샤오강촌의 농업 생산성은 크게 향상됐고, 빈곤에 찌들었던 농민들은 따뜻하고 배부르게 먹고 사는 '원바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 30살 나이로 토지 분할 비밀서명에 참여했던 샤오강촌의 옌홍창 생산대 대장은 "다바오간 제도를 실시하면서 촌락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샤오강촌에 이어 전국으로 확대된 다바오간 제도를 통해 중국 농촌은 일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샤오강촌 옌홍창 생산대 대장]
"중국 정부가 1982년 '가족 승포 책임제'를 정식으로 실시하면서 기존 인민공사 등 집단 생산책임제에서 가족단위 생산책임제로 개편한 결과, 농촌생산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됐습니다. "

샤오강촌에서 시작된 농촌 개혁의 열풍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동부 연안지역으로 퍼지면서 경제 전반의 개방을 이끌어 냈습니다.

베이징시에서 서남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반 가량 거리에 있는 팡산구 한춘허진도 농촌 개혁으로 촉발된 개혁개방 덕분에 '천지개벽'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크게 바뀐 대표적인 농촌 마을입니다. 개혁개방 이전만 해도 황무지 시골 마을이었던 한춘허진은 30년 전인 1978년 국가로부터 농촌현대화 시범지역으로 지정된 뒤, 이제는 선진국의 농촌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만큼 깔끔하고 현대화된 마을로 탈바꿈했습니다. 인구 2만 명 가량인 이 농촌에서 가장 잘 개발된 한춘허촌(村)은 2천7백 명 정도가 사는 농촌 마을이지만, 주민 1인당 연간소득이 평균 1만8천위안 (한국돈 약 400만원)으로 웬만한 대도시 못지 않은 고소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춘허촌은 마을의 개발을 주도하기 위한 '한춘허 건축조직'을 만들어 주택을 건립한 뒤 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값싸게 공급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개발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이 '한춘허 건축조직'을 건설회사로 키워 주민 대부분을 직원으로 채용함으로써 안정된 일자리도 제공했습니다. 이밖에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30 여명에 불과하지만, 1년 3백65일 농사가 가능하도록 최신 시설을 갖춘 온실에서 각종 특용작물을 재배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춘허촌 티엔시옹 공산당 서기의 말입니다.

[티엔시용 한춘허촌 당서기]

"농촌에서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소수만 농업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대다수 주민에게는 안정된 직장을 보장함으로써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한촌허촌이 만든 '한춘허 건축조직'은 지금은 한젠그룹이라는 중국 굴지의 건설회사로 성장했습니다.

한춘허촌 마을은 개혁개방 이래 지금까지 마오쩌둥 주석부터 덩샤오핑, 장쩌민 전 주석, 후진타오 현 주석을 비롯해 북한의 박봉주 내각 총리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다녀갔습니다. 관광지로도 개발돼 연간 30 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의 출발점이 됐던 농촌의 이 같은 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습니다. 중국 농촌에서 일단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됐지만, 개혁개방을 통한 산업화가 연해지역의 도시에 집중되면서 도시와 농촌 간 생활수준 격차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7억 여명에 달하는 농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 농촌 출신 일용근로자인 농민공 2억 여명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유입돼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지난 10월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기업농을 육성하고 농민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재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농지 임대나 토지경작권 양도를 허용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중앙위 회의에 앞서 지난 9월 말 30년 전 농촌개혁을 처음으로 단행한 샤오강촌을 다시 방문해 "농민들이 토지사용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세 번째 토지개혁을 선언했습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후 주석은 또 "농촌 발전과 개혁에 더욱 많은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4세대 지도부가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아 농촌개혁을 화두로 내세운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안정이 필수적이고, 그 밑바탕이 바로 농촌개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지도부는 또 토지개혁을 통해 농촌, 농업, 농민 즉, '삼농'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내수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삼겠다는 복안입니다.

이로써 샤오강촌은 이제 다시 새로운 농촌개혁의 시범지가 되고 있습니다. 샤오강촌 농민들은 최근 농지를 기업에 임대해 임대료를 거둬들이는 것은 물론 일을 해주고 월급도 받고 있습니다. 연말이면 배당금 수익까지 올립니다. 이 마을의 향후 발전계획은 기계화된 현대식 농업과 관광자원 개발, 농식품 가공공장 건설 등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샤오강촌의 촌장 겸 공산당 서기인 션하오 씨의 말입니다.

[샤오강촌의 션하오 촌장 겸 공산당 서기]
"샤오강촌은 중국 서부 농촌을 들여다보는 창이며 축소판입니다."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아 중국 지도부가 또 다시 화두로 내세운 농촌 개혁이 중국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