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지난 1966년 중국 선박이 납치한 것으로 추정해 온 길용호 사건을 납북 사건으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40여년 넘게 고통의 나날을 보내왔던 선원 가족들에게 보상의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한국의 통일부는 지난 1966년 중국 선박이 납치한 것으로 추정해 온 길용호 사건을 납북 사건으로 인정한다고 1일 밝혔습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당시 정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납북 사실을 공식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탈북자의 진술과 입수된 사진, 당시 중공이 공개한 외교문서 등을 토대로 납북으로 인정할 만한 사실들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납북피해자 심의위원회를 열고 본격적으로 조사했구요. 당시 중국과 외교채널을 확인해 보기 위해 외교부에 문의한 결과 당시 한국과 중국이 수교되기 전이므로 중국이 적십자사를 통해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부인한 외교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정황을 볼 때 납북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에 의해 억류된 남측 인원수는 길용호 선원 15명 가운데 이미 납북자로 인정받은 서태봉 씨를 제외한 14명이 추가돼 종전의 480명에서 494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남측 선원 15명이 탑승했던 길용호는 1966년 1월 서해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고기를 잡던 중에 실종됐습니다.

실종 당시 '중국 괴선박에 끌려간다'는 길용호 측의 무전연락에 근거해 중국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됐으나 이후 북한에 의해 납치됐다는 정황이 부분적으로 드러났습니다.

2001년 11월 탈북 귀환한 진정팔 씨가 '길용호 선원 전원이 북한에 끌려와 살고 있다'고 증언한 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길용호 선원 중 한 명인 서태봉 씨가 북한에서 남한에 있는 가족에게 안부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어 지난 5월 한국의 조선일보가 보도한 납북자 31명 사진에서 길용호 선원 서태봉, 정복식 씨가 확인되면서 길용호 선원들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해 '전후 납북피해자 지원법' 시행 이후 길용호 선원 가족 4명이 피해 위로금 지급을 신청함에 따라 다각적인 조사를 벌인 뒤 이 사건을 납북 사건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피해위로금을 신청한 김두섭, 이덕환, 양효근, 박성만 씨 등 4명의 가족은 한 가족당 3천만원씩의 위로금을 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의 가족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뿔뿔이 흩어져 연락조차 닿지 않고 있습니다.

납북자 가족모임에 따르면 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구명 노력을 하던 길용호 선원 가족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생계 등을 이유로 생사 확인 노력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길용호 선장이었던 박성만 씨의 딸 박순희 씨는 "정부의 입장을 기다리다 지쳐 10여 년 전부터 제사를 지내고, 일부는 사망신고까지 했다"며 "보상금을 신청한 가족 외에 나머지 가족들은 자신이 납북 피해보상 대상자인 것 조차 모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피해 당사자들이 벌써 돌아가신 분들도 많은데 이제라도 사실을 밝혀 납북자 본인과 가족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순희 씨는 "5년 전에 생사확인만이라도 할 생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40여 년 넘게 고통을 받아 온 가족들에게 생사확인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자의로 북한을 간 것도 아니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해 남편과 생계수단을 잃어버렸습니다. 또 대공수사과에서 간첩 혐의를 이유로 연좌제의 고통을 당하는 등 수십 년 간 불이익을 당해왔습니다. 저희 가족들에게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