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15일 광복 63주년을 맞아 순국선열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타종 행사가 서울 보신각에서 열렸습니다. 타종 행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각계 인사들이 선정돼 해마다 이뤄져 왔는데요, 올해는 처음으로 탈북자가 포함됐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15일 서울 보신각에선 63번째 광복절을 맞아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타종 행사가 열렸습니다. 해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각계인사를 선정해 타종식을 거행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탈북자가 포함됐습니다.

그 주인공은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탈북자 유금단 씨입니다. 타종 인사로는 유 씨 외에도 오세훈 서울시장과 여성우주인 이소연 씨 등 11 명이 선정됐습니다.

서울시는 "화합의 상징인 타종 인사로 유 씨가 선정된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유 씨를 통해 탈북자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유 씨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희망과 용기를 드리고 또 우리 사회에 동화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2002년 6월 남한으로 넘어온 유 씨에게 타종 소감을 묻자 힘들었던 지난 시절이 생각이 나는 듯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여느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하는구나 과연 이게 꿈인가라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난 생각들을 해보니 눈물이 나더라구요. 너무나도 영광이라고 생각하지요."

먹을 것이 없어 8살 아들을 남겨두고 중국 옌지에 있는 친척을 찾아 무작정 떠났지만 친척을 만나지 못한 채 중국 공안을 피해 숨어 지내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한국 땅을 찾은 유 씨에게 가장 신기한 것은 고향인 함경도에서 볼 수 없었던 대형 시내버스였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대형버스를 운전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기까지 넘어야 할 문턱은 높았습니다. 생전 접해보지 못한 운전 지식과 용어가 너무 어려워 13번 만에 합격통지서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온 지 18개월 만이었습니다.

기쁨도 잠시 지원서를 들고 직장을 찾아 다녔지만 유 씨를 반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탈북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눈물이 났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유 씨는 "탈북 당시의 고통과 배고픔을 떠올리며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게 당시 나를 붙잡아 준 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몸이 고단하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 '여기서 내가 물러나면 나도 똑같이 적응 못한 탈북자라는 소리를 듣게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목숨을 버릴 정도로 힘들게 여기로 왔는데 어떻게 해서든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어요?"

노점상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 차례 도전한 끝에 유 씨는 마침내 지난 3월 중견 운수업체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1일 2교대 근무라 새벽 4시에 출근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오히려 동료들을 격려하는 유 씨는 지난 7월 한 기업체로부터 '2008 환경대상'의 '칭찬합시다' 부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 씨에게 남은 걱정이 있다면 진폐증으로 힘겹게 투병중인 남편의 병원비입니다.

2005년 초 탈북한 남편은 탈북 전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북한에서도 악명 높은 22호 교화소에서 징역생활을 사는 바람에 극도로 건강이 쇠약해졌습니다.

엄마를 찾아 홀로 국경을 넘어온 아들 영철이의 뒷바라지도 걱정입니다.

빠듯한 생활비로 세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게 때론 힘들지만 함께 할 가족과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는 유 씨는 "열심히 살아서 탈북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유씨는 또 "탈북자들이 언어와 문화가 낯선 한국사회에 정착하기란 고통의 연속"이라며 "탈북자를 향한 사회의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남한에서 탈북자들이 잘못을 했다고 나쁘다고만 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 탈북자들이 정말 많으니깐 말 한마디라도 격려를 해줬으면 합니다. 탈북자들이 열심히 살다보면 성공할 기회가 온다고 말해주길 바랍니다. 통일이 되면 우린 똑 같은 한민족이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