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탈출한 뒤 중국에서 10년 이상 머물렀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로부터 정착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비보호 탈북자들이 보호 결정 신청서를 통일부에 다시 제출했습니다. 20여개 탈북 인권단체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 VOA 김은지 기자의 보도입니다.

한국의 대북인권 단체들은 7일 서울 세종로 통일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보호 탈북자에 대한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잘못된 탈북자 정책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비보호 탈북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이들은 잘못된 정책과 법률,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몇 개월씩 많게는 수년 째 일정한 거처지가 없이 방황하고 있어 건강은 악화되고 스트레스가 쌓여 극도로 불안해 하고 있고 조국이라고 찾아온 이 땅에서 하루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허용되지 않아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지난 달 22일부터 17일째 무기한 단식을 벌이고 있는 이성해 씨 등 비보호 탈북자 3명은 이날 통일부에 보호대상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습니다.

박상학 대표는 "지원법 시행령 제18조에 따라 비보호 대상자는 새로운 증거자료가 있을 경우 다시 보호신청이 가능하다"며 "지난 1일 신청서를 낸 데 이어 오늘 다시 신청서를 내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씨 등 3명은 10여 년 전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떠돌다 한국을 찾았지만 지금은 갈 곳 없는 노숙자 신세가 돼 버렸습니다. 체류국에서 10년 이상 근거지를 두고 생활했다면 정착 지원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탈북자 정착지원법 때문입니다.

법률 9조 4항에 따르면 '제3국에서 10년 이상 생활근거지를 두고 있는 자는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조항은 지난 해 1월 개정된 것으로 제3국 체류기간 기준이 종전의 '상당한 기간'에서 '10년 이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에는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어 중국 체류 '10년 이상'이라고 해도 보호 대상으로 결정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인단체총연합의 손정훈 사무총장은   "3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해도 보호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아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며 "현재 이성해 씨와 비슷한 처지의 비보호   탈북자가 24명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이들 비보호 탈북자들의 경우 중국에 근거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 협의회 심의 당시 비보호 대상으로 결정됐다"며 "한국에 올 의지가 있었다면 왜 한국행을 시도하지 않고 중국에서 오래 살았는지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보호 탈북자인 이성해 씨는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을 적발하는 즉시 강제 북송을 시킨다"며 "공안을   피해 숨어 살아온 우리에게 어떻게 중국에 '생활 근거지를 뒀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95 년 탈북해 중국과 방콕, 말레이시아를 거쳐 2006년 한국에 입국한 이 씨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도 한국에 가면 살 수 있다는 한 가지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며 "한국 마저 우리를 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한국에 가기 위해 영사관에 뛰어들어갔는데 아무도   나와주지 않았습니다. 중국 공안에 붙잡힌 사람들은 강제북송됩니다. 몽골로 가서 한국으로 걸어오려고 해도 길을 몰라 갈 수도 없구요. 북송될까 두려워 하루하루   불안에 떨면서 살고 있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에겐 한국은 마지막 희망입니다. 대한민국이 없으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

단식농성 17일째인   탈북자들의 건강도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들을 돕고 있는 탈북 난민인권협회   김용화 회장은 "채옥의와 박선녀 씨가 여러 차례 빈혈로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겼는데 오늘 다시 아픈 몸을 이끌고 청사 앞으로 왔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습니다.

김 회장은 "현재 중국에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을 떠난 탈북자들이 10만 명 이상이 있는데, 이들이 대거 남한으로 올 때를 대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수많은 비보호 탈북자들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비보호 탈북자를   위한 구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유선진당이 지난 달 11일   정책성명을 내고 관련법 개정을 촉구한 데 이어, 현재 일부 다른 의원들도 법 개정 추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