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지난 주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에서 채택된 의장성명에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살해 사건과 '10·4 남북 정상선언' 관련 문구가 동시에 삭제된 일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서울에 있는 VOA 김규환 기자를 전화로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우선, 금강산 사건과 10.4 남북 정상선언이 삭제된 사실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일부에서의 비판을 강력히 반박했다지요?

네, 그렇습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오늘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서의 관련 문구 삭제는 한국 외교가 완전히 실패했음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경위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 절차, 외교적인 절차, 다자회의에서의 그 협상방식에 대해서 외교적인 실패다. 무슨 그렇게 말하는 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판단이기 때문에…."

유명환 장관은 오늘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찾아 다자회의 협상 방식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유명환 장관은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라는 표현은 북한 측에 의해 향후 선전자료로 활용되고 국제사회에서도 원용될 가능성을 감안해 금강산 문제와 함께 존치시키는 것보다 모두 삭제하는 게 옳다는 결정에 도달해 동시 삭제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질문) 하지만 야권은 외교 실패를 거론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습니까?

네, 야권은 일제히 정부의 외교력 부재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통합민주당 등 야권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금강산 문제를 꺼낸 자체가 외교 실패라고 정부를 몰아붙였습니다.

[최재성 통합민주당 대변인] "외교는 외교대로 국제사회에서 망신당하고 남북문제는 남북문제대로 깊은 수렁에 빠트리게 할…"

반면 여당인 한나라당은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의장 성명 논란 책임을 북한의 생떼로 돌리며 정부를 방어하고 나섰습니다.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의 삭제를 요구한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백번을 지탄받아 마땅한…"

하지만 이정현 의원 등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이번 파문 사건 등 어이없는 외교적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며,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등 외교력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질문) 그렇다면 이번 파문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해주시죠?

네,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가 사태의 전말을 설명했습니다. 외통부 당국자는 이번 파문이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회의 진행을 미숙하게 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싱가포르는 회의 결과를 담은 성명을 채택하면서 초안을 각국 대표에게 돌리고 이의 제기를 수렴하는 절차를 생략했습니다.

그런데 최종본에는 10·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어서 한국 정부 측이 경악했고 북한 측도 금강산 부분이 포함돼 강력하게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남북으로부터 모두 항의를 받은 싱가포르는 두 가지 모두 삭제하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싱가포르는 절차를 생략한 채 성급하게 의장성명을 채택했고 회원국들의 항의가 있자 성명 내용을 수정해 스스로 성명의 권위를 훼손함으로써 분란과 갈등을 키운 것입니다.

(질문) 이와 관련해 한국 청와대 측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네, 청와대 측은 이번 파문과 관련해 초기단계에서 협의는 있었지만 최종 결정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 일부 언론에서 청와대가 최종 결정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의장성명이 마련되기 전 초기 단계에서는 10·4선언 부분은 빼는 게 좋겠다는 식의 입장표명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금강산 피격 사건이 함께 빠진 최종 결정과정에는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질문) 이번 사태가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습니까?

네,이번 사태가 일단 남북관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연구실장은 "현 정부가 지금까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 인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는데 이번 일로 10·4선언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부가 뭐라고 얘기해도 북한이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당국 간 관계 복원은 더욱 멀어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은 한국 측이 10·4선언을 부정한다고 확실하게 인식하게 돼 공격적인 방향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현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모두 한국쪽의 책임이라고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