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소속이던 제시 헬름즈 전 상원의원이 4일,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의 향년 86세. 헬름즈 전 의원의 대변인은 헬름즈 의원이 노스 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자연 원인으로 별세했다고 말했습니다. 생전에 미국의 강경 보수주의자로 큰 목소리를 냈던 헬름즈 전 의원의 면모를 되돌아 봅니다.

헬름즈 전 의원은 노스 케롤라이나주 출신의  극단주의 강경파 보수 주의자로 자처하고,  21세기가 훨씬 지나도록 자신을 견뎌봐야 할 것이라며 이는 신의 뜻이라고 일갈했었습니다.

헬름즈 전 의원은 연방 상원의원으로서 30년간 봉직하는 동안 의회에서는 물론 미 전국적으로  보수주의 움직임이 확대되던 시기에 강경파로서 강력한 목소리를 냈었습니다. 그는 상원 의원으로서 동성결혼, 예술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 미국의 해외원조 등을 앞장 서서 반대했습니다.

헬름즈 전 의원은 1921년에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기자로, 논평가로, 방송사 사장으로, 은행가로 활동하다가 1972년에 처음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벌였습니다.  헬름즈 전 의원은 상원에 진출하면서 곧 강력한 보수주의 대변자격으로 전국에 알려졌고 그런 그의 명성은 평생토록 지속됐습니다. 그는 군부를  지지했고 공립학교에서 기독교의 기도를 올리는 것을 지지하는 등 보수주의 가치관을 강력히 주창했습니다.  반면에 그는 인공유산 합법화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동성결혼과 예술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 등을 반대했습니다.

헬름즈 전 의원은 냉전이 종식된지 한 참 지나도록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중미 공산주의 국가, 쿠바는 그가 공격했던 단골 목표였습니다. 1996년에 제정된 헬름즈-버튼 법은 그의 반공사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입법사례로 꼽힙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의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가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습니다.  헬름즈-버튼 법은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 등 쿠바의 다른 교역상대국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항의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헬름즈 의원은 피비린내 나는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와 협상하려는 사람들은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앞서 1930년대에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에 유화책으로 대했던 네빌 챔벌린 영국 총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거듭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헬름즈 전 의원은 그의 고향, 노스 캐롤라이나주에선 상원의원 선거때 고전을 해야했었습니다. 그는 1984년에 간신히 재선됐고 그 다음 선거때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정치가, 하비 그란트와 힘겨운 경쟁을 벌였습니다. 헬름즈 전 의원은 당시 텔레비전 방송에 흰색 장갑을 낀 손으로  고용신청서를 꾸겨버리는 내용의 광고를 내기도 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당신은 일자리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일자리의 최적격자입니다. 그러나 인종적 할당제 때문에 그 일자리를 소수 인종에게 넘겨줘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공정한 것인가?  하비 그랜트 후보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당시 헬름즈 후보의 그런 광고가 나가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샀지만 그는 선거에서 승리했고 6년뒤 그랜트 후보를 다시 누르고 다섯 번째 당선에 성공했습니다.헬름즈 전 의원은 2002년에 은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