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여배우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대원으로 투입돼 전사한 한 한국인의 넋을 달래기 위해 그의 고향인 경남 사천에 위령비를 세우려던 일이 제막식을 앞두고 무산됐습니다. 이유는 일부 정치인과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는데요, 서울 VOA 김환용 기자가 자세한 내용 전해드립니다.

친한파 인사로 한국과 일본에 잘 알려진 일본의 유명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가 29일 서울 광화문의 `미국의 소리' 서울지국을 찾았습니다.

지난 1년 간 추진해 온 조선인 출신의 가미카제 특공대원 탁경현 씨의 위령비 건립을 위해 최근 한국을 방문한 구로다 씨는 친한파 인사답게 꽤 능숙한 한국말로 이 사업의 진행 과정과 무산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구로다 씨에 따르면 17년 전 어느 날 “나는 조선인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이름을 달고 죽었다”며 “원한을 풀어 달라”는 젊은이의 꿈을 꿨습니다. 구로다 씨는 이를 계기로 가미카제 관련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고 경상남도 사천 시에서 태어난 25살 청년 탁경환씨가 자살특공대로 투입돼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구로다 씨는 이 청년의 넋을 달래기 위해 위령비를 세울 것을 결심하고 지난 해 사천 시에 자신의 뜻을 알렸고, 사천 시도 구로다 씨의 제안에 흔쾌히 응해 위령비를 세울 땅을 내줬습니다.

위령비 건립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돼 마침내 지난 10일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막식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광복회와 사천 시민단체, 민주노동당 등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이 바람에 제막식은 취소됐고 급기야 5미터 높이의 대형 위령비는 지난 13일 철거됐습니다.

광복회 등은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경우 스스로 원해야 선발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탁 씨를 위한 위령비 건립이 부적절한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광복회 울산경남 연합지부 김형갑 지부장입니다.

“자기가 가미카제의 요원으로 희망을 해서 들어가서 이제 그 나라에 충성을 다해서 죽은 사람을 가지고 특히나 친일 중에 친일인데 그 사람 고향이 대한민국 사천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위령비를 세운다는 것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거 아닙니까?”

탁 씨는 소학교부터 일본에서 다녔고 교토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 육군항공대에 입대해 가미카제에 차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탁 씨의 이력은 일제가 강제로 징집한 조선인들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게 광복회 등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구로다 씨는 탁 씨의 자원 입대 여부를 떠나 시대의 희생자라는 관점에서 한국 국민들이 위령비 건립을 이해해주기를 희망했습니다.

“모두가 자원이라고 할 수 없구요, 자원하는 형식을 이용해서 사실상 강제적으로 간 사람들도 있고 어떤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많고 거의 다 각자 하나하나 이유가 있었고 시대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령비 건립이 반발에 부딪히자 당초 탁 씨 개인에 초점을 맞춰 새기려 했던 위령비의 비문도 탁 씨의 이름을 빼고 태평양전쟁 때 전사한 사천 출신 영혼들을 위한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구로다 씨는 이번 위령비 건립을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보는 일부 시각에 대해 “저술활동 등을 통해 지난 20여 년 간 한일 교류의 가교역할을 해 왔다”며 “이번 위령비 건립사업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구로다 씨는 “일본 관광객 30 명 정도가 제막식이 있는 줄 알고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사실상 민간 차원이지만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드리면 한국 사람 중에서도 이런 일본인 모습을 보고 마음을 풀어준다거나 그런 거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게 쌓여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오게 된다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마음이 풀어지는 날이 올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이거 세웠습니다.”

하지만 광복회 등은 “위령비를 꼭 세워야 한다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한다”며 “그러나 비문에는 전혀 그런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초 구로다 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부지까지 제공했던 사천 시 측은 구로다 씨의 좋은 뜻은 인정하지만 비석을 다시 세우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