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식량 지원이 재개되면서 그동안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한국 정부의 분위기도 점차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오늘 북한의 식량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면 북한의 요청이 없어도 식량 지원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이 지원할 요청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과 원칙을 유지하면서 북한주민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서울 VOA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식량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북측의 요청이 없어도 식량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국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밝혔습니다

유 장관은 19일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가진 내외신 기자브리핑에서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은 북 핵 문제와 연계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기본입장으로, 북한이 요청할 경우 이를 검토해서 직접 지원할 방침”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북한이 지원을 요청해 올 경우 이를 검토해서 직접 지원을 할 것입니다. 북한주민의 식량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거나 북한에 심각한 재해가 발생할 경우 식량 지원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유 장관은 북한의 식량난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북한에서 식량 1백20만t 정도가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우므로,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관계 부처 간에 계속 협의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명환 장관: “우리 같이 도로망이 잘 된 것도 아니고 통신수단, 교통수단이 잘 발달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양이 얼마가 있으니까 어떻다고 하는 판단보다 구체적으로 북한에 들어가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

이는 북한이 먼저 요청해야 지원한다는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북한의 식량사정과 국내여론, 국제정세 등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해법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해 북한이 지원을 요청하면 검토하겠다며 북한의 요청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에 식량 50만t을 긴급 지원하기로 나서면서 정부 안팎에선 북한의 요청이 없어도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식량 지원을 매개로 한 미-북 화해국면에서 자칫 한국만 고립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식량 지원을 먼저 요청해 올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합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19일 통일부 당국자는 외신기자들과 가진 정책설명회에서, 북한의 직간접적인 요청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지원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재난과 같은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북측의 요청이 없이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북한의 식량 상황이 긴급지원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므로 북한의 직간접적인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원 요청 형식과 관련해선 “서신이면 가장 좋겠지만, 적십자를 통한 의견교환이나 북측당국자의 발언 등도 상관없다”며 사실상 당국 간 서신요청이 없어도 상황에 따라 먼저 식량 지원을 제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대북 지원 원칙의 방점이 ‘북한이 요청할 경우'에서 ‘요청 없어도 지원하겠다’라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19일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정형근 남북관계특위위원장은 “북한이 현재 아사 초기 단계인 풀죽을 먹는 단계이며 우리 정부가 6∼7월에 걸쳐 20만톤을 긴급 지원해야 아사자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위 간사인 정문헌 의원도 “한나라당은 북한 식량 사정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분배 투명성을 보장하는 조건에서 최대한 빨리 지원하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