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린 영화 ‘크로싱’ 시사회가 최근 미국 뉴욕의 한 극장에서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한인 2세와 미국 젊은이들, 미국 거주 탈북자 등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매우 놀랍고도 슬픈 평화라며 ‘크로싱’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지난 2006년 처음으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잠시 잊었던 정체성을 찾게 해 준 고마운 영화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생사를 무릅 쓴 탈북자들의 탈출 이야기를 재구성한 한국 영화 ‘크로싱’ 시사회가 지난 달 워싱턴에 이어 지난 8일 뉴욕에서 열렸습니다.

미국내 한인 2세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대북 인권단체 `링크'가 영화 제작자인 패트릭 최 유니티미디어 사장과 함께 개최한 이날 시사회에는 한인 2세 젊은이들과 미국인 2백50여 명이 극장을 빼곡히 메웠습니다.

미국 내 한인1.5세와 2세 기독교 젊은이들이 설립한 대북 인권단체 솔트(PSALT)의 미셸 김 사무국장은, 가슴이 터질듯한 감동을 받았다며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인권 상황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관적 감동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질문에 미셸 김 국장은 손사래를 칩니다.

김 국장은 ‘크로싱’은 사랑과 가족의 애틋함이 묻어 있어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며, 이야기 전개 뿐 아니라 영화의 질적인 면에서도 완성도가 뛰어난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시사회를 관람한 젊은이들은 말로만 듣던 북한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인기배우 차인표가 주연을 맡은 영화 ‘크로싱’은 결핵에 걸린 아내의 치료약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한 한 남성이 어린 아들과 엇갈린 만남을 통해 겪는 탈북자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기독교 인권단체 ‘솔트’는  인터넷 소식지에 영화 ‘크로싱’을 소개하면서, 시사회에 참석한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폭로한 ‘안네 프랑크의 일기’ 또는 유대인들의 탈출 실화를 담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비유했다고 전했습니다.

미셸 김 사무국장은 흑인, 히스패닉, 백인 등 40여 명의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는데 모두가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들과 다음 날에도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영화의 감동을 계속 나눴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크로싱’ 제작을 총괄한 제작자 패트릭 최 씨는 젊은이들의 열기를 통해 흥행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와 줘야 그래도 흥행이 되는데 젊은이들이 과연 이 영화를 보러 오고 싶어할까? 또 보고 나서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번에 뉴욕에서 젊은 친구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서 참 기분이 좋았어요.”

헐리우드에서 영화 12편 이상을 제작 감독한 패트릭 최 씨는 의회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슨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과 공동으로 5월 말쯤 로스엔젤레스에서 추가 시사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LA 에서 시사회를 하자. 샘 브라운백 하고. 지금 날짜를 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5월 말쯤 할 예정입니다.”

최 씨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도 임시 제작한 영화 DVD를 전달했으며, 미국 국무부의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 특사 측으로부터도 요청을 받고 복사본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레프코위츠 특사측 관계자는 13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반응이 좋을 경우 영화를 백악관에도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뉴욕 맨해튼의 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지난 2006년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입국해 뉴욕 일원에 정착한 일부 탈북자들도 참석했습니다.

데브라 “ 차인표 씨가 진짜 북한에서 온 줄 알았어요. 와 너무 그 노력이. 그 말투가 정말 근사했거든요. 아이도 진짜 북한 애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차인표 씨를 모르고 봤다면 진찌 북한 사람인 줄 착각할 뻔 했어요.”

뉴욕 근처 뉴저지 주에서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데브라 씨는 영화가 자신의 현실과 너무 비슷해 울다 웃다를 반복했다고 말합니다.

“눈물이 한 없이 흘러 내리는데 이상하게 자꾸 웃기더라구요. 스토리가 너무 (나와) 똑같으니까. 왠일이야~ 이러면서 세 명이 앉아서 서로 쳐다보며 정말 공감하구. 와 진짜 똑같다. 똑같다. 이러면서 진짜 똑같아요. 하나도 지어낸 게 없잖아요.”

북한의 판자집과 장마당 등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세트와 소품. 데브라 씨는 한동안 미국생활 중 잊고 살았던 고향땅이 눈 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마음을 달래려고 새벽 4시까지 맨해튼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커피도 마시고 그랬어요. 보고 난 뒤에 지금 아침인데 아직 그 감동에서 못 깨어났어요.”

이런 소중한 영화를 만들고 볼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데브라 씨.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젠 저희가 미국에 온 지 2년이 됐잖아요. 그래서 살짝 여기에 적응이 돼 갔는데 다시 초심이 되살아나구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마음도 살아나구. 우리 부모, 형제, 친척 친구들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아프구, 어깨도 더 무거워지구,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국의 소리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