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8년 간 쿠바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지켜왔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임했습니다. 지난 1959년 집권한 이래 미국 주도의 침공과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미사일 위기,  그리고 40년 이상 계속된 미국의 경제제재 속에서 살아남은 카스트로 의장에 대해서는  혁명적 영웅이라는 평가와 잔인한 독재자라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쿠바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서 사임을 발표한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1926년 쿠바 동부의 한 사탕수수 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 출신 이민 지주였고, 어머니는 가사를 돌보는 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카스트로는 예수회 학교를 다니다가 하바나 대학에 진학해 법을 전공한 후 정치에 입문합니다. 카스트로는 이후 선동적인 연설로 급속하게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됐고, 당시 쿠바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에 대한 증가하는 저항운동의 주요 인물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1950년 초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은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무장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체는 1953년 쿠바 내 한 군 기지를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그 결과 카스트로는 체포돼 재판을 받고 감옥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2년 후 쿠바 정부는 그와 다른 여러 인물들을 사면한 뒤 석방합니다.

카스트로는 이후 멕시코로 도주해 그 곳에서 아르헨티나의 마르크스주의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나 쿠바 정부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준비합니다.

1959년 1월 카스트로는 마침내 바티스타 정부군과 싸워 승리합니다. 카스트로와 그의 게릴라 무장요원들은 하바나로 승리의 입성을 합니다.  많은 무장요원들은 카스트로 처럼 턱수염을 길렀고 녹색 전투복을 입었습니다.

많은 쿠바인들은 바티스타의 붕괴를 환영했고, 카스트로는 새로운 정부가 쿠바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카스트로는 진정으로 권력과, 돈 등 그 어떤 것에도 야망이 없다고 말하고, 단지 쿠바 국민을 섬기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카스트로 정부가 협동농장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10억 달러 이상의 미국 소유자산을 포함해 모든 은행과 산업을 국유화하자 우려가 확산됐습니다. 정치적 자유가 제한됐고 정부 비판자들은 수감됐습니다. 쿠바의 민주화 운동가인 프랭크 칼존 씨는 한때 카스트로의 지지자였던 많은 이들이 환상에서 깨어나 쿠바를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칼존 씨는 카스트로는 쿠바 국민에게 자유와 정직한 정부, 그리고 헌법 복원과 같은 많은 약속을 했지만 스탈린주의 식의 정부만을 선사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카스트로는 또 소련 연방과 긴밀한 연대를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을 위협하는 것으로 미국은 1960년 쿠바에 금수 조치를 가하고 몇 달 후 외교관계를 단절했습니다.

미국은 1960년 4월 쿠바의 정치 망명자들을 주축으로 쿠바 침공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쿠바 정부군은 허술하게 계획된 이들의 침공작전을 쿠바의 피그스 만(Bay of Pigs)에서 분쇄합니다. 1년 후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핵 전쟁으로 치달을 뻔했던 일촉즉발의 대결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밖에 카스트로는 소련군의 도움으로 아프리카와 남미에 공산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는 등 정치적 지원 활동을 벌입니다. 미국의 전직 외교관인 쿠바 전문가 웨인 스미스 씨는 이러한 카스트로의 행동으로 쿠바는 세계적으로 주요 국가로 부상했다고 말합니다.

스미스 씨는 카스트로는 쿠바를 세계 지도상에 올려놓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카스트로 이전에 쿠바는 바나나 공화국 정도로 여겨졌으며 세계정치 사안과는 무관했었다는 것입니다. 스미스 씨는 카스트로는 확실히 그런 양상을 바꾸었고 갑자기 쿠바는 아프리카에서 소련의 동맹으로, 그리고 아시아와 남미 등 무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카스트로는 동시에 문맹률과 영아 사망률을 많은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사회적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1990년대 초 1년에 60억 달러에 달한 막대한 소련의 재정지원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카스트로는 말년에는 남미의 좌파 지도자들이 이끄는 새로운 정부에 역할 모델이 됐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카스트로와 연대를 수립하고 쿠바 정부를 돕기 위해 경제 지원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카스트로는 2006년 장파열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동생 라울에게 한시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고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일 마침내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직과 군 최고사령관직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쿠바 전문가 스미스 씨는 이 지역에서 카스트로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미스 씨는 카스트로는 자신의 주요 지지자들과 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말년에는 남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이는 오랫동안 그가 해온 어떤 역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끝)